인생의 벗, 문학

시(詩)로 삶을 노래하며

  • 입력 2018.04.27 09:00
  • 수정 2018.04.27 18:33
  • 기자명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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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치가 디즈테일리는 ‘시인은 영혼의 화가’라고 표현했다. 시를 통해 사람들의 내면의 감정과 삶을 녹여내며 그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함축되어있다. 장봉천 작가는 어린 시절 문학의 길을 동경하며 시인의 꿈을 가졌다. 책 한 권을 구해 읽기 어려웠던 시절,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집을 읽으며 신념을 지켰다. 그에게 문학은 그리움의 꽃이다. 장봉천 작가의 문학관을 들어보았다.

풍요로움은 스스로에게 있다
장봉천 작가에게 문학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여유롭지 않았던 시절 푸시킨의 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그를 위한 노래처럼 들렸다. 그는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잠재된 단편소설인 가난한 사람들은 진정한 문학이 이뤄낸 희망의 메시지라고 표현했다.
문학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문학의 가치가 살아난다. 장봉천 작가는 시인을 꿈꾸며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향에서 도시로 갔지만 또 다른 고난을 이겨내야 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갖기 힘들었던 1970년대의 삶이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쉼 없이 책을 가까이하고 시집을 읽으며 교과서가 아닌 삶으로 문학을 배웠다. 더 넓게 배우고 익히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많은 습작을 해야 아름다운 옥토를 가꾼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어머니의 손길
장봉천 작가는 어머니께 릴케, 윤동주, 한용운 시집을 읽어드릴 때 기뻐하셨던 모습을 회상했다. 고된 노동을 하며 어머니를 모셨기에 나약해질 수 없었고 공부에 집중했다. 경찰공무원이 된 후 공직자의 사명감을 갖고 낮에는 일을 하며 밤에는 책을 읽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30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퇴직을 앞둔 시점 또 한번의 시련과 함께 건강상태가 악화됐다. 장봉천 작가는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카메라를 배우기 시작했다. 합병증으로 움직여야 하는 탓에 한 자세로 글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전국을 돌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고 건강이 서서히 회복됐다.

시인의 길목에서
60대의 나이로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 학문의 전당에서 만난 교수님은 어려운 시기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장봉천 작가는 시와 수필, 철학과 인문학 사상에 집중했다. 그는 사진이 문학과 접목시키면 예술적인 창조로 이뤄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한 뒤 사진활동도 함께 해나갔다. 2015년 부산문화재단 문학창작 선정이 되어 수필집 「삶의 향기」를 통해 삶에 대한 행복은 지킬 줄 아는 사람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자만이 시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깁니다. 사진예술 또한 보람을 창출한 영역입니다. 15년동안 어려운 사람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왔으며 봉사는 삶의 문턱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삶을 위해 봉사하며 문학으로 소통하고 시를 낭송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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