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학의 선구자

시민운동과 함께 한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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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적힌 글귀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국가의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라는 혁신적인 정책을 펼쳤다. 자본주의 체제에 비대해진 시장의 힘과 정부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결국 시민들로부터 나온다고 강조하는 교수가 있다. 피플투데이는 부산에서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사회운동에 평생을 바친 신라대학교 김대래 교수를 만나 지나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진짜 부산사람
김대래 교수는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다. 고등학교까지 강릉에서 마치고 부산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면서 부산과 인연을 맺었다. 군복무로 잠시 부산을 떠나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 부산에서 살아왔으니 고향에서 지낸 세월보다 오래 부산에서 살았다. 이젠 그 누구보다 부산을 사랑하는 진짜 부산사람이다. 부산에 관한 책을 많이 썼는데 그 때마다 저자소개에 쓰는 말이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부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김대래 교수는 현재 신라대학교 국제통상학부에서 경제학과 부산학을 교육한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 대학시절에도 열심히 공부했다. 다양하게 책을 읽고 전공공부에도 흥미를 붙였다. 학보에 글도 쓰고 학생회지에 논문도 기고했다. 1977년 전국 대학생 논문공모대회에 도전하며 입선을 한 경험도 있다. 돌아보면 이때의 경험이 진로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전역 후 주저 없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1988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강사생활을 하던 1989년에는 우연한 기회로 신문사에서 일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언론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부산에 새로운 신문사가 생겼다. 그때 논설 몇 편을 쓰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논설위원으로 특채되었다. 30대 초반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논설위원이었다. 3년여 신문사에서 지내면서 현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론과 현실의 관계와 같은 감각을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은 이후 학문 및 시민운동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부산학을 주창하다
대학으로 옮긴 뒤 일찍부터 부산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연구의 주제도 부산과 관련된 것을 많이 선택했고 다양한 매체에서 부산에 관한 글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오랫동안 부산의 각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하며 고정 집필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시간이 지나며 부산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마침 지방자치가 부활되고 지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각 지역에서 지역의 이름을 내건 연구들이 하나씩 등장하던 시기였다.

이에 김대래 교수는 부산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부산학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부산학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2년 신라대에 부산학센터를 설립하는데 앞장서고, ‘부산의 하루’라는 이름의 부산학 강좌를 신라대학교에서 개설하여 15년의 세월 동안 이어온 교육 역시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김대래 교수는 부산학연구자들과 함께 시민들이나 학생들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부산학 교재를 꾸준히 발간해왔다. 이는 부산학에 대한 김 교수의 열정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김대래 교수는 부산학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책과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도 꾸준히 진행한다. 부산의 정체성을 찾고 부산발전의 동력으로 승화하는 일이 부산학의 주요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김대래 교수는 부산학과 관련한 강의는 어디든지 마다않고 달려간다고 한다. 최근 부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마쳤다.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특강 초청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부산에 대한 기억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분들과 교감을 나누는 기회라고 여겼기에 가능했다며 부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김대래 교수는 다양한 부산학 관련 강좌를 기획하고 세미나를 조직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부산학 성과들이 축적되고 부산학 강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근래에 김대래 교수는 과거 본인이 만들었던 신라대학교 부산학센터의 소장을 맡아 더욱 부산학 연구와 교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민적 가치가 국가발전의 소중한 자원
연구와 함께 김대래 교수의 생활에서 한 축은 시민운동이다. 신문사에 있을 때 참여하기 시작하였던 시민운동을 대학으로 옮긴 이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으로 시작한 이래 10년 가까이 대표를 지냈고 그 후 전국 경실련의 공동대표도 역임했다. 경실련뿐만 아니라 많은 단체와 운동에도 관여하였다. 현재까지 청년사회실천운동, 지방분권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의 공동대표, 부산의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부산시민재단의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지역의 현안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국회도서관 부산분관 유치 운영위원장을 맡아 성사시킨 것은 최근의 큰 성과다.

시민운동 특히 경실련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김대래 교수의 전공과 관련이 있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항상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행복과 정책적 판단을 하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것은 경실련 운동의 가치와 부합하였다. 1980년대는 흔히 망국적이라 불렀던 부동산 투기와 부조리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그냥 방치해서는 우리사회의 존립까지 위태로워 보였다. 김 교수는 경제정의를 우선적 가치로 삼는 경실련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 30년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성과도 많았지만 아쉬움도 크다고 한다. 토지공개념을 제시하면서 불로소득을 없애려고 분주했던 기억부터 대형유통업체의 골목상권을 막기 위해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잡던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은 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김대래 교수는 말한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조직은 리모델링을 해야 또 다른 세월을 버틸 수 있다. 무엇보다 우선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서 벗어나 시민과 함께 하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모든 것이 어두웠던 과거에는 비판만 해도 반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비판만으로는 주목을 끌지 못한다. 합리적인 정책을 동시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김대래 교수는 부산경실련 산하에 시민대안정책연구소를 만들었다. 김 교수는 이 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 비판과 함께 시민적 관점에서 대안이 되는 정책을 만들어 제시하면서 설득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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