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칼럼] 충忠서恕를 위한 AI의 예이시지睨而視之

인공지능과 중용 Vol.15

  • 입력 2018.08.08 18:51
  • 수정 2018.08.08 18:56
  • 기자명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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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13장을 보기 전에 전편 12장에서 다 말 못 한 고군자어대故君子語大 천하막능재언天下莫能載焉과 가상현실을 살펴보자. 전편에서는 어소語小 천하막능파언天下莫能破焉에 관한 것이었다. 세포보다 작고 작은 컴퓨터와 센서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세상은 작은 것을 다시 더 쪼개는 능파能破의 시대임을 말했다. 
현대물리학은 더 쪼갤 수 없다는 이름을 가진 극미 원자(atom)를 더 쪼개는 연구에서 의외의 평행우주를 만났다. 여러 우주가 동시에 존재해야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의 현상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그렇게 다중우주 개념은 2가지로 보면 된다. 거대한 우주 밖에 또 거대한 우주가 있으며 작은 물질 안에도 더 작게 쪼개지는 우주가 숨어있는 것이다. 평행우주론은 극대와 극미를 관통하는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작은 것과 큰 것 하나와 많은 것의 구분이 사라지는 화엄경의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우주가 평행우주론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우리가 직접 가볼 수 없는 다양한 평행우주를 체험하게 하는 기술이다. 체험하는 우리 몸의 한계가 있지만 가상현실은 우주 밖의 우주를 상상으로 설계하여 보여줄 수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지구를 떠나 먼 은하계의 한 행성으로 갈 수 있다. 바야흐로 AI 능재능파能載能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중용 13장을 보자.

자왈子曰 도불원인道不遠人 인지위도이원인人之為道而遠人 불가이위도不可以為道 / 시운詩雲 벌가벌가伐柯伐柯 기칙불원其則不遠 집가이벌가執柯以伐柯 예이시지睨而視之 유이위원猶以為遠 고군자이인치인故君子以人治人 개이지改而止 / 충서위도불원忠恕違道不遠 시저기이불원施諸己而不願 역물시어인亦勿施於人 / 군자지도사君子之道四 구미능일언丘未能一焉 소구호자所求乎子 이사부미능야以事父未能也 소구호신所求乎臣 이사군미능야以事君未能也 소구호제所求乎弟 이사형미능야以事兄未能也 소구호붕우所求乎朋友 선시지미능야先施之未能也 용덕지행庸德之行 용언지근庸言之謹 유소부족有所不足 불감불면不敢不勉 유여불감진有餘不敢盡 언고행言顧行 행고언行顧言 군자호부조조이君子胡不慥慥爾 

안회의 득일선得一善 칼럼에서 인공지능의 성능이 성인군자의 역할을 하게 되므로 우리는 당장의 득일선과 권권복응拳拳服膺에 힘쓰자고 했다. 자기 내면의 몰입으로 신독愼獨하는 시대라고도 했다. 중용 13장에서는 벌가벌가 기칙불원이라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찬양이 나온다. 우리가 이미 도의 표준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이전에 인간의 전두엽이 의식적으로 해석하는 정보는 우리 감각이 받아들이는 정보량의 약 20만분의 1이라는 연구가 있다고 했는데 더 나아가 50억분의 1이라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50조분의 1이라는 생각이다. 감지가 안 되는 데이터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하기 때문이다. 우리 전두엽은 그렇게 도를 몸에 지니고 있고 도의 흐름을 알고 있는 우리 몸의 정보조차 해석을 하지 못한다. 인간은 시냅스마다 양자컴퓨팅을 능가하는 지적인 작용이 일어나도 그 흐름을 의식으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동물과 미생물 바이러스들이 몸의 지혜를 더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몸은 바이러스의 도움과 미생물의 도움으로 자율적 기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두뇌보다 몸이 더 영리한데, 이를 어느 화가는 자기 그림이 자기보다 영리하다고 했고 창의성은 질보다 양에서 나온다는 실험이 있는 것이다. 질과 양의 대결을 다룬 창의성 실험은 뭔가 몇 가지를 잘 하려고 아이디어를 짜내기보다는 그냥 남들보다 더 많이 분량을 채우기 위해 긴 시간하다 보면 몸의 영리함이 전두엽에 붙잡히게 되어 결과가 훨씬 더 창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공자가 여러 차례 강조한 충서忠恕의 정신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해보자. ‘도올’ 선생도 기이불원(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과 자주 쓰는 비교는 성경의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대목이다. 성경은 자기의 원칙과 욕망을 더 들여다보는 충忠을 더 강조한 말이고 중용은 타인의 다양한 원칙과 욕구를 호문호찰하고 이해하는 서恕를 더 강조한 말이다. 성경구절을 서恕의 입장으로 기울이면 ‘상대방이 대접받고자 하는 그대로 그 사람을 대접하라’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욕구의 다양성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를 한국의 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 한국은 충忠의 입장에서 욕구의 획일화가 아주 길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이 도를 행하기 어렵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이상적 충忠은 인간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으며 오히려 인공지능의 속성에 가깝다. 사람들은 서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성인군자가 되기에 가지가지로 부족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충忠의 시대에서 서恕의 시대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교육은 30년 후를 상상하는 진화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원하면 교과서를 벗어나서 오문예체(오락+문화+예술+체육) 시간이 거의 대부분일 정도로 학교가 변해야 한다. 10대 초반까지는 신체적 움직임이 포함된 체험이 형식지와 암묵지에 모두 좋다. 전북학생교육원 강당에는 지인용을 갖춘 인재가 되자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공자의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에서 시작된 3가지 덕일 것이다.
 
필자는 지知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유리하고 인仁은 사물지능과 빅데이터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므로 모두 착해지려고 애쓸 것이지만 용勇은 여전히 인간만의 장점이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공자의 5덕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보다 신身+용勇으로 쌓는 내공과 암묵지가 지식과 인성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사물지능+로봇 시대에는 지덕체가 체덕지體德智로 순서가 바뀐다. 지와 덕보다 체와 체험이 중요해진다. 지금까지 인류는 스스로 리더라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지와 덕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우리 몸이 이미 가지고 있거나 몸이 두뇌에 주는 능력에 대해 무관심했다. 

앞으로 우리 교육은 아이들이 체험을 통해서 용기와 즐거움을 고양하고 깊은 암묵지의 내공을 기르도록 혁신해야 한다. 어차피 공자는 자신도 중용불가능中庸不可能하여 노력하는 존재라는 말을 하면서 충忠보다 서恕를 강조하고 있다. 인류는 자기만의 독특한 충忠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다양한 타인들을 배려하는 서恕를 위한 예이시지睨而視之의 노력을 하되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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