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도 인간에게도 한계는 있다

청학동역학연구원 은희석 원장

  • 입력 2019.02.11 11:28
  • 수정 2019.02.11 11:29
  • 기자명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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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 오피스텔 틈에서 청학동역학연구원을 찾아가는 일은 뚱뚱한 도시 비둘기들 사이를 헤치며 귀여운 앵무새를 찾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간판이라도 크게 내걸면 손님들이 더 쉽게 찾아오지 않을까? 그러나 은희석 원장은 말한다. “간판을 거는 게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역학은 학문이다. 장사도 기술도 아니고, 오로지 학문에 근거할 뿐이다. 나는 근거를 바탕으로 사주를 분석한다. 솔직하고 냉정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라도 찾아온다. 몇 번이고 다시 온다.”

기술이 아니라 학문이다
80년도, 한문을 강의하던 청학동역학연구원 은희석 원장은 어느 날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가 들른 장소들은 시흥과 미아리 등지의 점집, 무당집, 철학관들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쳤다. ‘부적을 쓰면 인생이 풀린다. 정성으로 기도하면 다 죽던 사람도 살아난다.’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며 은 원장은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세계에는 사(邪)가 많구나. 나는 정(正)을 추구하겠다.”

은 원장은 책을 펴고 역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비록 세상은 그의 뜻을 알았을지라도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삼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은 원장은 ‘역술’이라는 말보다 ‘역학’이라는 말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도록 힘을 쏟았다. 음지의 기술을 양지의 학문으로 끌어내려 노력했다. 롯데백화점 명동, 상계동, 잠실 등지에서 사람들의 사주를 학문적으로 분석해 주었다. 같은 업계의 사람들이 물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 바글바글한 곳만 골라 가나?” 그는 대답했다. “음성적인 기술로 취급받는 역학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떳떳하게, 당당하게 해서, 학문으로 인정받고자 함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은 원장은 냉정하다. 고객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다. 내 집 식구를 대하는 것처럼, 있는 대로 듣고 있는 대로 답한다. 간혹 화를 내며 욕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거친 얼굴로 문을 닫고 나간다. 그러나 얼마 뒤, 그 거칠었던 얼굴이 동그래져서 다시 문을 열고 쑥스럽게 말한다. “저, 다시 왔습니다. 저번에 말씀해주셨던 것들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은 원장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역학은 통계적 운명론이다. 당연히 맞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사업을 하다 망한 사람이 찾아온다. 질병에 걸린 사람이 찾아온다.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도 오고,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도 온다. 은 원장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아니, 역학이야말로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 정확함과 솔직함에 매료된 손님들이 6년이고 7년이고 은 원장을 찾아온다. 그리고 은 원장은 언제나 한결같다. 한결같을 수밖에 없는 학문이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갓끈을 매고 저고리를 걸친 채 수염을 쓰다듬는다. “신에게도, 사람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오로지 운명일 뿐이다.”

병원 문 앞에서 부모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에게 부적을 권하는 사람들. 안 그래도 아픈 환자들에게 두 번 상처를 입히는 사파들에게 그는 일갈한다. “학문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역학도 그렇다. 신을 빙자하려 들지 말라. 그것은 사기에 불과하다.” 은 원장은 오늘도 책을 편다. 그리고 오는 사람을 맞이한다. 그의 방에서는 책과 사람, 데이터와 휴머니즘이 결합한다. 절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알 수 있는 것만 말한다. 즐거운 사주를 가진 사람은 즐겁게 돌아간다. 그리고 괴로운 사주를 가진 사람은 괴롭게 돌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것이 왜 어렵겠는가. 그러나 괜히 간판을 걸지 않듯, 괜히 고객을 확보하지 않는다. 그것이 은 원장의 정(正)이다.

한계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지금, 이 복잡하고 다난한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은 원장은 전한다. 인내하라. 그리고 받아들여라. 지성보다 인성이다. 너희들은 스파게티를 좋아하듯이 타로카드를 좋아한다. 짧은 시간에 후다닥 만들어서 후루룩 먹듯이, 눈에 확 들어오는 이미지를 보고 왁 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나 나이든 이들은 그렇지 않다. 된장국을 좋아하듯이 역학을 좋아한다. 푹푹 끓여서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천천히 마시듯, 오랜 역사를 지나온 체계를 배경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나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이 그들의 학문이다. 바로 우리의 역학이다.

은 원장이 본 올해 대한민국은 다음과 같다. 오행학적으로 나무가 천천히 성장해서 뿌리를 내리는 형국. 전반기에는 다투더라도, 후반기에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찾아올 것이다. 갈수록 모두가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작년이 뜨거운 화산이었다면, 올해는 큰 물줄기와 같다. 그의 말이 과연 맞아떨어질까? 분석을 마치고, 그는 덧붙인다. 무조건 맞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지. 기술이 아니라 학문이니까. 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니까. 학문에도 인간에게도 한계라는 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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