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그리는 화가

이종서 화백·한국동물사랑화가협회장

  • 입력 2019.02.11 15:32
  • 수정 2019.02.11 16:15
  • 기자명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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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릴 때, 나는 길을 많이 그립니다. 길 위에 사람을 그리기 위해서입니다. 풍경화에 인물이나 동물이 들어가야 그림의 주제가 확실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길을 다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추억을 떠올리는 길을 그립니다. 그 길 위에는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길들이 포장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량 문제로 많이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나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릴 때는, 넓은 길을 좁게 그리면 됩니다. 포장도로를 보고 비포장도로로 그리면 됩니다.”

다시 이종서 화백을 만났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홍천군의 아미산에서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화가의 얼굴이 맑았다. 현재 이 화백은 군청에서 후원하는 미술사랑 동아리에서 강의를 하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사랑하는 동물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이종서 화백에게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오늘도 그림을 그립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 이 화백은 그림을 통해 곁을 떠나간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린다. 그리운 이들과의 추억, 그 시작과 끝을 기린다. 그래서 이 화백의 그림 주제는 ‘이종서의 그리운 시절’이다. “내 예술에는 그리움의 감정이 가장 강하게 작용해요. 내가 가진 그리움의 감정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강한 것 같아요.”

옛 시절을 추억한다는 것
이 화백이 그림을 시작하던 60년대 초, 영등포에는 명보극장, 서울극장 등의 유명 극장들이 많았다. 이 화백은 용사회 극장 옆에서 살았다.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간판은 극장 벽에서 그렸다. 어린 시절의 이 화백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극장에 가서 간판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극장 간판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

이 화백은 학교를 중퇴하고 극장가로 향했다. 잠도 안 자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만난 강민 선생님은 이 화백의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 주었다.

“강민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가 하던 이발소의 단골손님이었어요. 알고 보니 그분도 간판을 그리는 분이었어요. 그분은 경기도 포천의 운천극장에서 간판을 그리고 계셨어요. 그분에게 그림을 배우게 되었죠. 그분은 제자가 자신을 넘어서기를 기다리는 분이셨어요. 항상 제게 자신보다 나은 화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는 지금도 제자들에게 그런 감정을 갖지 못해요. 그런데 그분은 언제나 나를 격려하고, 이끌어 주셨죠. ‘너는 한국 최고의 화가가 될 것이다’라고. 저는 그분의 바람대로 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너무 미안한 마음이죠.”

이 화백이 강민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우던 시절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이 화백의 후배들은 간판을 그렸던 시절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이 화백은 이렇게 답한다. “내가 그 시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만나던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화백은 65년부터 극장 간판 그리기를 그만두었다. 간판은 6일이 지나면 그림을 지우고 다른 영화 간판을 그려야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그린 그림을 지우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 화백은 극장을 떠나 운천에 있는 미군 부대로 가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이 화백은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났다. 영화감독 박영환 선생님이었다.

박영환 선생님은 한때 영화로 큰 성공을 거두어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됐지만 독립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모두 소진하고 재기를 위해 붓을 들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이 화백을 만나 운천 미군부대 옆에서 함께 화실을 경영하게 되었다. 박영환 선생님은 이 화백에게 정성이 담긴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인물만 그리면 색을 모른다. 풍경만 그리면 데생을 모른다.” 주옥같은 한 마디를 통해 이 화백은 하나의 예술관을 깨우치게 되었다. 하나에 머무르지 않는 법, 어제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법.

79년, 이 화백은 화곡동에서 미술학원을 열었다. 소중한 선생님들에게 물려받은 그림의 정신을 제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부르고, 주변 고등학교 미술부 아이들이 모여들어 제자가 50명을 넘었다. 아이들은 이 화백의 가르침에 눈을 빛내며 붓을 잡았다.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자라 화가가 됐다. 당시 이 화백의 학원에 다니던 학생 중에는 현재 유명 대학의 교수로 일하는 사람들도, 미술협회 협회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화백은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나로부터 그림을 시작했다는 것이 혹시라도 그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아이들과의 학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 화백은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아미산 산중에 터를 잡았다.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굼실이라는 개를 키우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산 생활을 시작하면서 굼실이라는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그 개가 죽었어요. 그 빈자리를 못 견디겠더라고. 그래서 굼실이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랬더니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고등학생 아이가 ‘저 그림 인터넷에다가 올려 드릴까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네 마음대로 해라’ 그랬더니 자기가 찍어서 올리더라고. 그러니까 하루에 이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더라고. 강아지의 눈빛이 살아있다고.“

이 화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물에 대한 애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안겨 주고 싶다. 동물들은 사랑을 받기 충분한 매력과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이 화백은 동물들을 위한 작품 활동과 전시회를 계속하고 있다. 오로지 동물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다. 수입이 생기면 어렵게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도울 예정이다.

이 화백은 올해도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이 화백과 뜻이 맞는 화가 170여 명이 모여 만든 그림사랑모임에서 주최하는 전시다. 소속된 화가들이 한 점씩 출품하고, 이 화백도 여러 점을 그린다. 이번 전시회로 생기는 수입 역시 동물들에게 도움이 되는 곳에 기부한다. 사랑하는 동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들의 고통에도 마음이 쓰인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성의 없이 동물을 키워요. 개를 묶어놓고 나가서 며칠이고 집에 안 들어오거나, 털을 안 깎아줘서 눈코입이 안 보이거나. 그래서 내가 돌아다니면서 물도 주고 털도 깎아주고 그러죠.”

어떤 사람들은 동물에 정성을 쏟아 키우지만 어떤 사람들은 영하 20도가 넘어가는 질퍽질퍽한 지푸라기 위에 소를 방치한다. 소가 풀을 밟으면 거름이 되니까. 사람은 동물에게 욕심을 부린다. 이 화백은 여건이 되는 사람이라면 일단 강아지를 한 번이라도 키워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동물이 욕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고. 일단 교류를 해보면 마음이 변할 거라고, 싫어하는 사람이더라도 키울 수 있는 여건이 있으면 키우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은 달라질 거라고.

이 화백은 단호하게 말한다. 인간사의 구조는 욕심이라는 것 위에 건설됐으며, 사람들은 욕심으로 움직인다고. 욕심을 버리면 움직일 사람이 없기에, 이 세상이 멈춘다고. 그 욕심 때문에 강한 사람도 상처를 입지만 약한 동물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받는다고. “욕심부리는 사람들한테는 자꾸 뭘 줘야 하잖아요. 동물들이 줄 게 자기 몸뚱아리밖에 더 있어요?” 

이종서의 그리운 시절
 “이제 내가 그리고 싶은 건 크게 두 가지에요. 동물과 풍경. 지금도 나는 굼실이가 낳은 자식 똘이를 키우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 또 하나 키우는 강아지가 말질이. 앞으로 그 아이들도 내 그림에 나올 거에요. 내 풍경화에는 항상 사람이 나와요. 풍경만 그려서는 재미가 없잖아요. 그리고 소재가 있어야 어떤 제목도 생기잖아요. 그래서 인물을 그려넣어요. 주로 어머니를 그리게 되죠. 주제는 무조건 이종서의 그리운 시절이에요. 그리운 시절은 내가 젊었을 때 시절,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살던 시절. 그걸 그리고 싶어요.”

시절은 지나간다. 사람은 누구나 예전을 그리워한다. 아무리 현재를 충분히 살아내도 훗날 돌아보면 못내 아쉬운 것이 삶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나의 시절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시절이 온다. 굼실이가 가면 똘이가 온다. 비포장도로 위에는 아스팔트가 깔린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예술이 있다. 손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기릴 수 있다. 화가는 포장도로를 보고 비포장도로를 그릴 수 있다. 떠난 굼실이를, 그리운 어머니를 그릴 수 있다. 그리움을 그릴 수 있다.

Profile
-일본 
신원전 대상
마스터즈 대동경전 초대작가
동경아시아미술대전 초대작가상

-한국 
한국국제미술문화상
한국미술국제대전 고문 심사위원장
신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술공모대상전 심사위원
국제 H.M.A 예술제 심사위원 
外 30회 이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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