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개발사업, 낙후지역개발과 탐욕적인 투기의 두 얼굴

  • 입력 2019.04.01 18:16
  • 수정 2019.04.01 18:17
  • 기자명 원영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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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나 수도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낙후된 도시 빈민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가정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친다. 바로 재개발이다. 사람들이 건물을 철거하려고 중장비를 앞세우고 할머니와 아이들이 몸을 이용해서 막으려 한다. '야학'하던 대학생들도 주민들과 같이 힘을 합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세입자는 갈 곳이 없고, 가난한 소유자는 딱지는 있으나 분양 잔금을 납부할 수 없어 재개발된 아파트의 주인은 온통 타지 사람들이다.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보상금만으로는 어디에도 살 집을 구할 수 없는 가난한 가족은 결국 어딘가로 쫓겨 난다. 용달차나 리어카에 몸을 싣고 어디든 가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 과거 드라마에서 간간이 보이는 장면들이다. 

지난해 7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흑석뉴타운제9구역 재개발을 노리고 전 재산을 올인(all in) 했다. 김의겸 전 대변인은 25억 7천만 원으로 상가건물을 구입했고, 두 배 가까이 시세가 뛰었다는 소문이 있다. 이명박-오세훈 시장 때 지정되었던 뉴타운 재개발들은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대부분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금 여권이 바라보는 재개발 사업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가난한 가족을 내쫓는 중장비 철거반과 동일하다. 그러나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는 작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면서, 시장 취임 즉시 서울의 모든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도장을 날인하겠다는 일성을 날렸다.

이렇듯 누구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며, 다른 누구에게는 개발의 상징이다. 김의겸 전 대변인은 앞에서는 증오의 대열에 동참했다가 뒤에서는 개발의 실익을 취하려 했다는 이유로 전 국민의 비난을 받고 청와대 대변인 직에서 사임했다. 후속하는 각종 편법과 개발정보 취득의 의혹 제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재개발은 가난하고 낙후된 도시 슬럼가를 현대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이다. 도심재개발은 세금을 투입하는 기반시설 설비나 사업참여자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는 미분양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유자, 거주자 등 사업참여자 모두에게 큰 이익을 준다. 그러나 재개발 구역 내의 거주자들과 소유자들의 의사를 합치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어떤 지주에게는 현재 상태가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으며, 굳이 지금 재개발되기 보다 더 미래를 기다리고자 한다. 보상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느낌이다. 세입자들도 현재 상태를 최선으로 보기도 하며, 이주비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 거주자나 소유자 중 어느 누구든 먼저 재개발에 동의하기보다 제일 마지막 동의자가 되려고 하며, 언제든지 시위나 집회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거주자가 없는 산과 들을 택지로 개발하는 신도시 사업은 정부의 밀어 부치기 식 개발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산과 들의 입지조건은 도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무도 찾지 않아 미분양이 발생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정부나 건설회사에 전가된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특단의 기반 시설이나 거주 요건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의 재개발은 드라마 속의 탐욕스러운 자본의 어두운 얼굴이 아니다. 주택보급률이 형편없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돌파했다. 앞서 드라마들이 만들어질 때 드물었던 임대주택은 현재 무려 130만호 이상이 공급되었다. 매년 작게는 8만호에서 많게는 14만 호의 임대주택이 공급되고 있으며, 저소득층과 장애인에게 우선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사통팔달의 전철, GTX와 도로망으로 굳이 서울에 거주하지 않아도 서울 외곽에서 손쉽게 서울 직장으로 통근이 가능하다. 이제 저소득층에 대한 이주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재개발은 진행되지도 못한다. 저 드라마 속의 가난한 가족이 갈 곳으로 과거와 비할 바 없는 많은 해법이 있다.

분양대금을 납부할 수 없는 가난한 소유자들은 억울하게 쫓겨나는 것일까. 재개발을 해야 할 정도로 낙후된 도시빈민촌은 아무도 집을 매수하려는 사람이 없다. 소유자들이라고 해서 거주여건이 좋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기 집을 팔고 싶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팔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재개발구역 지정이 되면 그 기대효과로 비로소 매매가 일어난다. 분양권인 이른바 '딱지'를 받을 수 있기에 그 전의 시세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소유자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프리미엄을 받고 매도해서 현금화할 것인가. 아니면 보유하고 아파트를 분양받을 것인가.

재개발은 사업의 취소나 지연의 리스크가 높다. 온갖 변수들이 있어 고위험 고수익 투자상품이다. 앞서 이명박-오세훈 시장 때 오래되고 허름한 낡은 건물을 고가에 매수했던 투자자들은 모두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재개발 사업의 완료까지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고 집을 매도하여 현금화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재개발 사업이 가져다주는 부가가치는 사업참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며, 더 이상 과거의 드라마 속의 비극은 없다.

아파트는 우리나라 현대 도시의 상징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아파트를 논하는 방송예능프로를 보았다. 그 방송에서의 아파트는 문제가 많은 주거의 전형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아파트는 대규모의 공용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는 일종의 공동구매와 같은데, 대표적인 것이 주차장이다. 50평 정도의 단독주택 대지에는 구현할 수 없는 쾌적한 대단위 주차장이 만들어지고, 위 주차장은 80년대 이후의 마이카 시대를 뒷받침하는 힘이었다. 또한, 지금도 아파트는 쓰레기분리수거, 초고속인터넷, 친환경, 신재생에너지까지 시대의 새로운 화두를 담는 그릇 역할을 하고 있다.

강남의 대치동 아파트와 지방 아파트는 시세에서 차이가 날지 모르나 비슷한 평면과 구조, 시설 등을 가지고 있어, 주거문화는 큰 차이가 없다. 거실에는 TV와 소파가 있고, 부엌은 거실과 붙어있다. 누군가 소파에 삐딱하게 누워 리모컨을 사용해 TV를 보고 있으며, 부엌에서는 아이들이 거실에서 노는 것을 보면서 요리를 한다. 경비아저씨는 정원수를 손보고 택배도 대신 받아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놀이터와 어르신을 위한 쾌적한 경로당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주거문화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상향식 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왜 아파트에 살고 싶지 않겠는가. 빽빽이 작고 낙후된 집들이 들어서 있는 작은 골목길 가로등에서 서정을 느끼는 것은 명백한 위선이다. 또한, 이것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동물원의 동물 보듯이 구경하는 것에 불과하다. 재개발은 기존 조합원들에게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기회이며, 분양받지 않는 거주자들에게도 소형아파트나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기회를 제공한다.

시대는 변한다. 과거의 감성은 새로운 도시의 발전을 막는다. 이제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탐욕적인 자본의 횡포보다 권력층이 내부정부를 이용해 불공정한 이익을 취득하는 것이다. 

 

원영섭 변호사 Profile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중앙대 건축공학과 박사 수료

법률사무소 집 대표변호사
중앙대 건설대학원 겸임교수
건설관리학회 고문변호사
자유한국당 관악갑 당협위원장

저서 <건설부동산법률 실전사례의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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