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우리나라 꽃

김영배 화백·연변대학교 실습중심분원장

  • 입력 2019.04.15 18:04
  • 수정 2019.04.15 18:05
  • 기자명 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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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맑은 수술은 우리 민족의 눈, 꽃잎은 환하게 웃고 있는 한민족의 얼굴, 단심은 핏줄, 나뭇잎은 옷, 나무는 어떤 어려움에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하고 힘찬 버팀목 같은 뼈로 생각하며 무궁화를 그린다. 단순한 꽃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상징을 그릴 때의 마음은 엄정하다. 반만년 한의 역사가 물감이 되어 붓을 적신다. 그렇게 그려야 비로소 우리, 이 세상 누구도 갖지 못할 우리 것을 그릴 수 있다. 평생을 바쳐 무궁화를 그린 김 화백에게 무궁화는 어떤 의미일까. 마지막에는 꼭 그 의미를 묻고 싶었다.

저녁이면 얼굴을 감추는 꽃
김 화백은 예술의 고장 진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만 해도 앞마당에 무궁화를 심은 집이 많았다. 무궁화가 피고 지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붓이 갔다. "무궁화는 저녁에 지면서 수줍게 오므라들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듯이. 그게 보기 좋았습니다. 마냥 좋아서 그렸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무궁화 그림이 벌써 사십 년째다.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 김 화백의 무궁화 사랑은 변함이 없다. 아직도 김 화백은 무궁화를 그리고 있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미술대전에 입선한 진도의 화가들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그것을 보면서 김 화백은 무궁화 앞에 굳게 다짐했다. "나는 나중에 대통령상을 받는 화가가 되겠다." 커다란 꿈을 안고 그림을 그렸다. 무려 열 번의 낙방이 이어졌다. 그러나 김 화백은 한 번도 낙방에 대해서 실망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그려도 만족을 못 느껴요. 당연히 떨어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떨어졌나 하고 원망한 적이 없었어요. 벌써 내 마음에도 안 드니까. 고대하던 입선인데도 결국 '이게 왜 입선이 됐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무궁화는 아무리 잘 그려도 흡족하지가 않아요. 될 때까지 출품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열한 번째 도전에서 김 화백은 입선을 차지했다. 그리고 열세 번의 입선과 한 번의 특선이 이어졌다. 열 번을 입선에 들면 심사위원 초대작가가 된다. 화가에게는 더없는 영예지만, 더는 미술대전에 출품할 수 없게 된다. 대통령상의 꿈은 이룰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화가는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김 화백에게는 다른 꿈이 생겼다. 체념할 새도 없었다. 붓이 스스로 나와 멈출 줄 모르고 춤을 췄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 한 점을 만들기 위해 화가는 마지막까지 붓과 함께할 것을 맹세했다.

"어떤 동료들은 자기 그림에 만족해요. 나는 그런 자아도취를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지금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작품에 대한 만족감은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끝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싸워봐야죠."

스승과 제자가 하나 되어
김 화백은 연변대학교에서 실습중심분원장을 맡고 있다. 연변대학교 학부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 화백도 만학도였다. 자신이 만학도였기 때문에 김 화백은 개인 사정으로 학업을 놓은 학생들이 다시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옛날 어려웠을 때 시기를 놓쳤던 분들이 지금 연변대에도 한 서른 명은 됩니다. 꿈을 버리지 않고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들 훌륭한 화가들입니다. 저한테 참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저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제도는 참 좋은 제도에요. 우리나라에는 지금 만학도를 위한 정책이 많이 없거든요.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어서 우리 연변대로 많이 옵니다. 연변대학교는 우리 민족의 대학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습니다. 교수진도 충분한 수상 경력을 갖추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국내에서 수업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씩 본교로 가서 특강을 받으면, 나머지 학점은 모두 국내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김 화백에게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 "가수가 히트곡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하듯, 우리 화가도 자신만의 소재가 없으면 그림을 오래 못 그립니다. 나를 알리기 힘들고.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하나의 소재만큼은 이 세상에서 제일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려야 작품과 나를 알리는 효과도 크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람 욕심은 이것저것 다 그리고 싶겠죠. 그렇게 해서 물론 좋은 점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중심이 없어지거든요. 자기 캐릭터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 것을 외면하는 사람들
"몇 번을 참 가슴 아픈 게, 좋은 날에는 벚꽃축제를 하잖아요.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에다 왜 벚꽃을 심어 놓고 축제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벚꽃을 잘라버렸다는 기사가 나오더라고. 그걸 보면서 '하나 자르려면 다 잘라버리지' 그럴 정도로 속이 시원했어요. 무궁화의 날이 지정된 지도 얼마 안 됐어요. 내가 건의도 하고 그랬는데 3년 전인가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우리나라 꽃에 참 무심해요. 
예로부터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외면하고 무시해요.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 아니라는 얘기나 하고. 일본을 보면 언제나 자기들 것을 사랑하고 홍보를 해요. 벚꽃만 해도 그렇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것을 무시하고 남의 것을 좋아해요. 그게 참 아쉬워요."

우리 것에 바친 사십 년. 김 화백에게 한국화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러나 세태가 변하고 있다. 그림의 세계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 표정은 우리가 보기에 어색할 만큼 달라졌다. 

"서양화는 면을, 한국화는 선을 중시합니다. 한국화는 소재 자체부터 우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것도 무궁무진한 표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것을 소재로 해서 우리 것을 알리고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그림을 요즘은 쉽게 볼 수 없어요. 요즘은 재료나 기법도 동서양이 따로 없이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뒤섞이고… 그림도 시대상에 맞게 그리긴 그려야 합니다. 그러나 정체성마저 사라지면 안 됩니다. 전통은 전통대로 보존해야 해요. 그런데 너무 현대화로만 관심이 쏠리니까 조금 아쉽습니다. 요즘은 생계 수단으로 많이 그림을 그리는데 먹으로 그리던 한국화 정통 작가들이 다른 사람들이 화려한 색을 위주로 그리는 작가들을 따라 아크릴판을 사고 채색화를 그려서 돈하고 바꾸는 경우가 많아요. 작가들이 많이 인내해야 하는데 또 생계와 관련이 있어서……. 옆에서 보면 그런 부분이 속상해요."

다시 그려나갈 2019년
김 화백은 연변대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이 해마다 함께 여는 사제동행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4년 전에 사단법인 무궁화미술협회를 만들었다. 앞으로는 협회를 통해 무궁화를 알리고 홍보도 많이 할 생각이다.

"저는 무궁화 고장인 강원도 홍천을 사랑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홍천에서 무궁화 축제를 해요. 10년 전에 홍천에서 예술가들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찾아가서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홍천에서 ‘무궁화 작품 걸기 운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무궁화를 백 점 정도 그려서 지역 주민들한테 무료로 드리고, 미술관이나 협회, 면사무소나 경찰서에도 드리고, 그렇게 해서 홍천군 주민들의 자택과 관공서에 무궁화가 가득 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무궁화미술협회를 통해 김 화백은 무궁화 꽃을 주제로 다양한 상품도 만들고 미술 대회도 개최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꿈
"꿈이요? 무궁화 꽃을 이 세상에서 제일 잘 그릴 때까지 그리고 싶어요. 누가 봐도 감동을 할 수 있는, 그런 무궁화 그림. 그런 작품을 한 점이라도 그려 보는 게 제 꿈입니다. 항상 부족해요. 그려놓고 보면 항상 아쉬워요. 그래서 내 화실에는 작품이 별로 없어요. 보면 창피하니까 붙였다가 떼고 또 붙였다가 또 떼고, 그럽니다."

마지막까지 김 화백에 무궁화란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어차피 김 화백에게 무궁화란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꽃이 아니었다. 지금 김 화백은 하나의 완전한 무궁화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꽃,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무궁화. 결국은 화가를 꿈꾸던 어린 시절도, 미술대전 심사위원인 지금도, 언제나 꿈은 대한민국의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꽃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다. 붓을 잡은 지 사십 년이 흘렀다. 강산이 모습을 바꿀지라도 소중한 꿈은 변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의 세월만 흘러간다.

Profile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회화학과 졸업(학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동양화학과 졸업(석사)
대한민국미술대전 입·특선 연 14회(한국화, 문인화)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연 4회(구상, 비구상, 문인화)
대통령 하사패, 공로패, 감사장 수여
문화체육부장관상 수상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문화예술부문, 무궁화대상)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외래교수 역임
현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사)한국미술협회 남북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사)한국무궁화미술협회 부이사장
무궁화 문화예술관장, 현묵회 회장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한국실습중심 주임교수(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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