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공예를 선도하는 한국의 名人

김승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명예교수, 갤러리소연 대표

  • 입력 2019.05.16 14:03
  • 수정 2019.05.16 14:57
  • 기자명 김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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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차갑다', '날카롭다'라는 금속의 인식을 깨뜨리며 대한민국 금속공예의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김승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명예교수는 금속공예가로서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이다. 
한국 금속공예의 발전을 위해 외길 인생을 걸어왔으며 특히, 미술계에서 으뜸으로 꼽는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를 만든 주인공이다. 지난 2012년 정년퇴임을 했지만, 여전히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큰 존경도 한몸에 받고 있는 김 교수.

지금은 내국인 뿐만 아니라 종묘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자주 들리면서 새로운 문화명소이자 마음을 채워주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은 갤러리소연에서 새로운 공예가를 발굴하고 공예의 대중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철 적동, 황동, 정은 금 200*50*150㎝
오케스트라 철 적동, 황동, 정은 금 200*50*150㎝

작은 힘이 모여 큰일을 이루는 공예화랑, 갤러리소연
1994년 개관했을 당시에는 크래프트하우스란 이름이었지만, 작은 자연(小然)이란 의미인 갤러리소연으로 이름을 바꿨다. 세계문화유산 종묘의 담길 옆에 자리 잡은 갤러리소연은 올해로 25주년을 맞는데, 카페와 야외마당, 전시장, 세미나실, 작업공방을 갖춘 복합공간인 공예화랑이다. 
금속, 도자, 섬유, 유리, 목공예 등 다양한 공예전시를 130여 회, 연 1000여 명에 달하는 공예작가들이 공예에 참여했을 만큼 김승희 교수와 다른 금속공예 작가들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이곳에서는 김 교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공예작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장신구 작품 전시를 즐길 수 있다.
“함께 작은 힘들이 모여서 큰일을 이룬다는 가치를 담았어요. 지난 4월에는 갤러리 25주년 특별전으로 ‘Love&Compassion’이란 주제로 국제 로터리 여성위원회와 공동기획한 전시를 열어 얻은 수익금을 어려운 환경이지만, 힘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미혼모와 청소년 가장에게 얻은 수익금을 전달했습니다.”

수집하기 용이한 금속공예 
평생을 금속공예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 온 김승희 교수. 최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공예주관'에 참여하면서 우리 공예의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우표, 그림, 화폐, 골동품. 모두 수집하기에 좋고, 문화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경제적 가치도 오르는 물건이다. 그중에서 다른 물건들에 비해 보편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그림이다. 사실 금속공예품도 수집하는데 뛰어난데 오히려 보관과 금전적인 측면에서는 그림보다 낫다. 김 교수는 사람들의 한쪽으로 치우친 인식을 지적하면서 말했다.
"그림은 비싼 건 한없이 비싸잖아요. 근데 금속공예는 훨씬 저렴해요. 부피도 작아서 보관하기도 좋고요. 장신구 같은 경우에는 착용해 멋도 부리고 선물로 하기에도 아주 좋아요."

풍경2006 철, 적동, 황동, 포리코트&안료 120*120㎝
풍경2006 철, 적동, 황동, 포리코트&안료 120*120㎝

편견 뛰어넘는 금속의 색깔 있는 변신
22살 때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승희 교수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 가 크랜브룩 미술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4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김 교수는 본질적인 의미에 찾아 나섰다.
“문득 ‘한국 공예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그 당시에는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금속 공예의 뿌리를 찾아나섰죠.”
금속 공예의 이론과 기술을 배우는데 매진한 그는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나섰고, 미도파백화점(현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연 개인전이 큰 성공을 거뒀다. 그 후 반상기, 구절판, 은수저, 촛대 등 우리나라 전통 식기를 디자인해서 출품했는데, 사람들의 호평과 함께 작품 주문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금속공예
전통 생활 식기를 선보였던 김승희 교수는 작업을 거듭할수록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나갔다. 우리나라 민화 중 그릇 그림에서 이미지를 얻은 입체 조형물 오브제 -“금속으로 그린 그림”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김승희 교수. 어느 날 우연하게 자신의 금속 오브제를 작게 축소해 브로치를 만든 것이 현재 장신구 작가로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특히, 그는 보석과 금속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장신구 창작 활동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금속공예의 지평을 넓혔다.
"2015년 프랑스 국립 장식에서 열린 한국 공예 패션 디자인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도 큰 인정을 받았어요. 우리에겐 흔한 것이라도 그들에겐 진귀했으니까요. 우리가 가진 예술성을 널리 알리면서 기쁘기도 했고요."

세계에 알린 금부 기법
금부 기법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 고유의 기법이다. 은제품 표면에 얇은 순금판 문양이 부착되는 기법으로 노란색 금과 백색 은 문양의 상감효과를 돋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금박 기법과는 다른 것으로 금박은 0.1μ(micron, 미크론)인 반면 금부는 100μ(1미크론은 1㎜의 1/1000)이다.
1980년대 말 미국에서 금부 기법에 관한 워크숍에 참여할 당시 김승희 교수는 고민에 빠졌다. 우리의 기법인 금부 기법을 어떻게 영어로 소개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김 교수는 주위의 조언을 듣고 무릎을 쳤다.
“당시 현지 교수님이 '왜 고민하고 있어. 그냥 있는 그대로 소개하면 안 돼?'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워크숍에서 우리말 그대로 '금부'라고 소개했어요. 그 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국가의 금속공예 작가들에게 알려지면서 한국 금부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이 각광을 받고 있죠.”

삼색단지 브로취 3점 정은, 적동, 금, 아루미나 6*7*1㎝
삼색단지 브로취 3점 정은, 적동, 금, 아루미나 6*7*1㎝

후학 양성으로 금속공예 발전 이끌다
김승희 교수는 금속공예가뿐만 아니라 교육가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국민대학교 금속공예과를 만들었고, 교수로도 재직했던 김 교수. 외국의 유명 교수를 초청하는 등 노력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은 학과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금속공예를 알리고 있다. 
지난 2012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36년간 제자를 양성했던 김 교수에게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냐는 질문에 웃으며 이야기한다.
"모두가 다 소중한 제자들이죠. 학생들이 좋은 작가로 거듭나고, 세계에서 우리 금속 공예의 우수함을 알리고 있기도 하지만, 제게 가장 고마운 아이들이에요. 제가 일궈낸 모든 것들이 과연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냈을까요? 아니에요. 자르고, 두드리고, 금속을 다루는 것만 해도 저 혼자 하기에는 버겁죠. 주위, 제자들이 도와줬기에 오늘날의 제가 더욱 빛을 바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금속'으로도 공예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온기를 불어넣는 예술가 김승희 교수. 하나의 작품이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세계에 한국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그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을 것이다.

Profile
서울대학교 및 미국 크랜브룩 미술대학 졸업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M.F.A)
1973 전미 은기공모전 입상 (미국 뉴욕)
1988 한국공예가협회상 수상
1995 제6회 석주미술상 수상
2006 제18회 목양공예상 수상
2007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대통령 표창상 수상
2008 알마 아이커만상 수상(더 메이커스, 미국)
개인전 13회, 국내·국제 초대전 200여 회
현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명예교수
갤러리 작은자연·소연 대표작가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청와대, 워커힐미술관, 서남미술관, 동아미술관, 한림미술관, 익산보석박물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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