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김석기의 미술여행] 례뜨니(여름)공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기사승인 2019.06.10  16:53:56

공유
default_news_ad1
▲ 례뜨니공원의 조각품들

네바강과 판탄까강을 끼고 아름다운 공원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백조의 수로'라 불리는 운하로 둘러싸여 있는 례뜨니 공원이다. 여름 공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공원은 1704년 뾰뜨르 대제가 러시아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제는 러시아 귀족들이 서구 유럽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공원을 만들고, 그 곳에서 파티를 자주 열었다. 공원으로 들어서는 큰 길가에는 이탈리아 명장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하얀 누드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대제가 파티에 참여하는 귀족들의 폐쇄적 사고를 개방 시키고자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을 묘사한 220개의 석상들을 세웠는데 대부분 누드 조각상들이다. 대제는 파티를 귀족들이 서양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사고로 개방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조각상들이 현재는 91점만 남아있고, 정원도 본래의 규모보다는 많이 좁아졌다고 하지만 공원의 아름다움은 대단하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녹색의 빽빽한 나무숲 하며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조각 작품들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기에 충분하다. 역사를 간직한 석상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 여름공원에서_김석기 작가

공원의 한쪽에 대제가 1712년에 세웠다는 례뜨니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네덜란드 식으로 지었는데 뾰뜨르 대제가 주관하는 파티와 회의를 위하여 사용하였으며, 외국대사를 영접하기도 하였고, 황제의 가족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궁전 앞에 작은 저수지가 폰딴까강과 이어지고, 물결 따라 세워진 화강암 원형 기둥에 화려하게 장식된 철재 울타리가 아름답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공원의 호수를 노니는 백조들을 바라보며 작품을 구상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백조의 호수 이야기는 러시아에 널리 알려진 전설을 재구성한 것이다. 성인식 날에 지크프리트 왕자가 왕비와 신하들과 친구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왕자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많은 여인들의 유혹이 이어지지만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왕자는 외롭기만 하고, 그 앞에 나타난 마녀의 술수로 왕자는 또 다른 세상, 호숫가로 나와 그곳에서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되어버린 수많은 아름다운 아가씨들을 만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오데트 공주를 만나 반해버린 왕자는 공주를 마법에서 풀어 주기 위해 변치 않겠다는 사랑을 고백하고, 왕자는 궁으로 돌아와 무도회장에서 오데트와 결혼을 발표하기로 결심하면서 오데트를 기다린다. 각국의 왕녀들 가운데 신부감을 고르라는 왕비의 독촉은 계속되고, 악마 로트발트는 자기의 딸 오딜을 오데트와 닮은 모습으로 변장시켜 무도회에 나타난다. 오딜을 오데트로 착각한 왕자는 오딜과 결혼을 발표하고, 악마와 오딜(흑조)은 사라진다. 왕자의 판단 실수로 영원히 백조로 살게 된 오데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달려온 왕자를 오데트는 용서하고 다시 사랑을 약속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한 마녀는 폭풍우를 부르며 그들을 갈라놓기 위해 또 다른 마법을 건다. 

▲ 례뜨니공원 케레스상_김석기 작가

이 위대한 작품을 만든 페테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는 러시아의 보트킨스크에서 태어나 광산 감독이었던 부친과 프랑스계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으며 프랑스계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음악교육은 부모들이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교육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 법률학교에 다니면서도 성악·피아노·화성법 레슨을 받았고, 오페라 극장을 찾아다니며 좋아하는 음악 공부를 하였다. 법률을 공부하여 공무원이 되었던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1862년 새로 설립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고, 1864년에는 첫 번째 관현악 작품을 썼으며, 1865년 말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화성법 교수가 되었다.  

1876년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좋아한 부유한 미망인 '나데츠다 폰 메크'가 지원하는 연금을 받게 되면서 교수직에서 벗어나 작곡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그녀의 청에 의하여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으나 오직 그녀를 위하여 4번 교향곡을 완성하였다. 두 사람은 플라톤익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이 갖고 싶어 했던 정신적 음악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차이코프스키는 미국과 영국을 포함하여 많은 여행을 했고, 영국에서 협주곡과 교향곡을 지휘했으며 1893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정신병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으며 1890년에는 폰 메크 부인의 연금도 끊어지고 그의 병세도 더욱 악화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의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당시 도시를 휩쓸던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황실의 남자들과의 동성애로 비난받게 되자 추문을 피해 음독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차이코프스키의 묘_김석기 작가

차이코프스키와 음악은 하나였다. 그의 음악은 자기표현적이었고 풍부한 선율과 영감, 상상력과 관현악법에 대한 재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후기 작품에서는 의식적으로 러시아의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 있는 정서와 특징은 다분히 러시아적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고, 아름다운 상상은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차이코프스키가 거닐던 여름 공원의 아름다운 호숫가를 아내와 함께 걷는다. 오데트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숫가를 여유롭게 노니는 백조들이 한가롭기만 하다.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김석기 작가 ksk0004@hanmail.net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1
default_side_ad2
1 2 3
set_P1
ad41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bottom
ad40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