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필 칼럼] 어금니 풀어

  • 입력 2019.08.01 16:11
  • 수정 2019.08.01 16:17
  • 기자명 황용필 성균관대 겸임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배님, 넥타이부터 푸세요.”
퇴직 후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한마디라며 내게 소개해준 멋진 말이다. 
다 내려놓고 편하게 살라는 거다.
요새 아내한테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는 “어금니 풀어!”다.
휴대폰 사진에 찍힌 내 모습들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에 ‘아하 아직도 더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사람이 뭔가 결심을 하거나 작심을 할 때 세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는 살아있는 눈빛, 둘째는 주먹 쥔 손, 셋째는 꾹 다문 입이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거의 죽을 뻔한 교통사고에서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난 이야기를 읽었다.  

어느 금요일 오후, 그녀는 친구들과 교외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서둘러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 중간쯤에 차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가까스로 차를 세운 그녀는 습관적으로 백미러를 살폈다. 그런데 그녀 뒤를 따라오던 차 한 대가 전속력으로 달려 멈출 기미가 없었다.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거나 졸고 있는 듯했다. 순간 그녀는 습관처럼 운전대를 꾹 움켜쥐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는 물론 우리들이 사는 방법이다. 
조갑천장(爪甲穿掌)이란 말이 있다. 세종대왕 때 유능한 관리였던 양성지(梁誠之)에 비해 그의 손자 양충의(梁忠義)는 젊은 시절을 허송하다 마흔이 됐다.
할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손자라고 주변의 손가락질에 공부를 시작하고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다시는 손을 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성공하고 나서야 쥐고 있던 주먹을 폈는데, 그사이에 손톱이 자라서 손바닥까지 파고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독한 결심’을 일컫는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녀는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양손을 옆으로 내려놓았다. 운전대를 놔버린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순순히 나 자신을 맡겼다. 뒤이어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얼마 후 사방이 고요해지며 눈을 떴을 때 놀랍게도 그녀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멀쩡했다. 앞뒤로 차들은 박살 났고 그녀의 차 역시 중간에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경찰은 몸의 긴장을 완전히 푼 것이 그 열쇠였다고 했다.
사고로 그녀는 큰 선물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사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길게 줄을 서서 진출구를 빠져나가려는 도로에서 중간에 누군가 끼여 들어오면 참지 못한다. 경로석에 앉아있는 젊은이를 보면 속으로 실컷 욕한다.
자전거와 애완견이 진입하지 못 하게 하는 산책길에 버젓이 자전거를 타고 확성기를 틀고 가고 사람들을 보면 노골적인 표정과 함께 심하게 욕했다.
식사 한번 하자며 갑자기 전화 온 후배가 아직도 감감무소식에 화가 나기도 했다. 사소한 것에 화를 내고 괜한 것에 참견하고 작은 것에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세상이란 꼭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 틀이 아니다.
스티븐 코비가 어느 일요일 아침 뉴욕의 지하철에서 겪은 패러다임, 생각의 틀을 전환케 하는 멋진 예화를 소개했다.

조용히 신문을 읽거나 눈을 감고 쉬고 있는 매우 조용하고도 평화스러운 전철 안에 이윽고 한 중년 남자와 그의 아이들이 전철에 타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만다. 아이들이 떠들고 제멋대로 날뛰는 난리굿이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주변 승객들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아빠라는 작자는 죽은 듯이 앉아만 있는 것이었다. 참다못해 아빠 되는 남자에게 말했다.
“저렇게 폐를 끼치는 아이들을 좀 조용하게 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제야 남자는 상황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처럼 눈을 약간 뜨면서 말한다.
“그렇군요. 저도 뭔가 어떻게 해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막 병원에서 오는 길인데 한 시간 전에 아이들 엄마가 죽었습니다. 저는 앞이 캄캄하고 뭣 모르고 떠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순간 고통과 짜증으로 가득 채워졌던 승객들의 마음에는 “저런, 저런!”하면서 동정심과 측은함이 가득해 졌다. 

분해서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내려다가 순간을 넘겨 보내지 않은 다음 날 문득 다시 그 문자를 읽어 본 적이 있는가? 휴가철, 삶의 충전기에는 꽉 쥔 주먹대신 쫙 펼친 손바닥으로 바람과 비 그리고 햇빛을 담을 일이다.  
 
<네 테 쿠아이시베리스 엑스트라(Ne te quaesiveris extra)!
19세기 미국의 지성 랠프 왈도 에머슨의「자기신뢰(SELF-RELIANCE)」에 등장하는 첫 문장으로 “너는 네 자신을 밖에서 찾지 마라!”라는 뜻이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