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디자인을 입히다

박재봉 디자인 한옥 연구소장·짐 건축연구소 건축가

  • 입력 2019.08.14 11:09
  • 수정 2019.08.14 11:26
  • 기자명 김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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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전통의 멋은 있지만, 생활하기에는 다소 불편하다.’
일반적으로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인데, 의외로 한옥을 관광하거나 체험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서울 북촌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등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걸 보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한옥의 우수성과 과학적 기능을 인정받은 상황에서 한옥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피플투데이가 만난 박재봉 건축가는 한옥 특유의 멋을 살리면서도 생활의 편리함까지 고려해 한옥을 전문으로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있다.

머리로 상상하고 꿈꿨던 건축가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 명소인 북촌한옥마을에서 만난 박재봉 건축가. 활동적이기 보다는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혼자
만의 시간을 갖다보니 건축가를 꿈꿨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신문이나 책에서 볼 때는 외국의 경우 건축학이 예술대학에 속한 반면 우리나라에는 공대에 포함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건축 대신 미대를 가게 됐어요. 유학도 고려해봤는데, 집안 사정상 어렵겠더라고요. 대신 일단 미대로 가서 기본적인 부분을 배우고 난 뒤에 충분히 건축 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박 건축가의 부모도 그의 선택을 존중했기에 반대 없이 대학교로 진학한 박재봉 건축가는 학교 수업을 성실하게 들으며 졸업했고, 당시 그의 나이 25살 때 동기들보다 일찍 취업하게 됐다. 그렇게 그는 사회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노력으로 일궈낸 성공가도
‘비범한 가운데 평범함을 찾자.’
평소 박재봉 건축가가 마음에 새긴 말이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신입사원이었던 그에게 사보 디자인 업무가 맡겨졌다. 당시 그는 기존의 틀에서 깨고 새로운 디자인을 사보에 접목해 회사 내에서 금세 자리를 잡고, 인정을 받았다. 물론, 이를 위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당연했다.
“지금과 달리 디자인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자료를 찾기가 드물어서 개발하는 게 쉽진 않았죠. 그래서 아침에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1~2시간 일찍 출근해서 공부를 했어요. 퇴근도 동료들과 함께 했다가 몰래 회사로 돌아가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했고요. 지금 되돌아보면 이렇게 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탄탄대로를 걷던 그에게 건축가가 될 전환점이 찾아왔다. 광명동굴의 설계 의뢰를 받은 것이다.

천직을 찾게 된 도화선
당시 광명동굴은 서울 근교라는 좋은 지리적 요건과 무료입장이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시설 탓에 지금과 달리 찾는 이가 매우 적었다. ‘광명동굴의 재탄생’이라는 의뢰를 받은 박재봉 건축가는 광명동굴이 사람들에게 리마인드 될 수 있도록 설계에 들어갔다. 그의 설계를 토대로 시공에 들어갔고, 새 옷을 입은 광명동굴의 변신은 광명시를 넘어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명소가 됐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유료화를 했음에도 동굴을 찾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광명동굴 설계가 끝난 뒤에 어떤 분에게 제주도에서 일반 주택 설계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조금은 색다르게 한 필지에 지붕이 네 개가 있는 집을 설계했어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의뢰하셨던 분도 만족했는데, 제게도 조금 남다른 의미였어요. 당시 작업을 하면서 ‘역시 내가 가야할 길이 건축이구나’를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후에 본격적으로 건축가 활동을 하게 됐죠.”

의뢰인의 마음과 생각 읽어 채우는 설계
회사를 나와 박재봉 건축가는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렇기에 한옥 뿐만 아니라 양옥도 설계하는데 능통하다. 특히, 의뢰인에 원하는 부분 뿐만 아니라 집을 설계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 등을 전체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설계한다.
“예전부터 원하고, 꿈꾸던 일을 하니까 즐거워요. 특히, 일할 때 의뢰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통하고 대화할 때 건성으로 듣거나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과 생각을 읽으려고 노력하죠. 그렇게 하면 일을 진행하기가 굉장히 수월해지거든요.”
설계에 있어서 그가 중점을 두는 것은 미니멀리즘이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소중한 보금자리를 화려하고, 가득채우고 싶지만, 박 건축가는 최대한 미니멀리즘을 실현한다.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 자기만의 색깔을 채워넣는 재미를 의뢰인에게 알려준다.
그렇게 의뢰인을 세심하게 배려하기에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박 건축가는 한옥 디자인을 30대 젊은 층에게 보급하기 위해 모던하고 간결한 느낌이 들도록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친환경 주거 형태, 한옥
가장 보편화된 주거 형태인 아파트와 달리 한옥은 한옥만의 매력이 있다. 아파트와 양옥은 콘크리트, 철근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한옥은 목재, 흙, 돌, 한지 등 친환경적 자재를 사용한다. 구조적인 차이도 있는데, 아파트와 달리 한옥에는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기에 유용한 마당이 있다. 또한, 아파트에는 거실이 있다면 한옥에는 툇마루, 대청마루, 쪽마루, 누마루 등 다양한 형태의 마루들이 존재하는 이 특징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특유의 난방 문화인 온돌도 한옥의 특징 중 하나이다.
다만, 한옥은 다른 주거 형태보다 평당 건축비가 비싼 편이며 입지와 자재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여기에 기단, 벽체, 지붕, 바닥, 천장, 마당 등 유지·관리에 손이 많이 가는데 한옥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박재봉 건축가의 말이다.
“한옥이 아니더라도 다른 주거형태에도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한옥도 마찬가지에요. 자신은 만족하더라도 가족 구성원에게는 생활하는데 불편할 수 있거든요. 대화로 갈등을 풀어나가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게 중요합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얻은 깨달음
일반적으로 한옥은 ‘ㄱ’자형, ‘ㄷ’자형 구조인데, 박재봉 건축가는 다양한 형태로 해서 새로운 한옥 디자인을 구상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남들보다 특이하고 독특한 디자인을 추구했는데, 막상 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분명히 보기에는 좋은데, 직접 사용하면 불편했거든요.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면서 결국엔 ‘가장 좋은 디자인은 가장 평범한 디자인이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그걸 기본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초창기에 박 건축가는 ‘면’을 주로 사용했다면 지금은 최소한의 ‘선’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 색상인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최적의 설계를 찾고, 공간의 용도와 분위기에 맞게 조명도 각기 다른 종류로 배치함으로써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일
박재봉 건축가는 평소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일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발레와 합창단을 하고 있다. 다소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을 수 있지만, 박 건축가는 개의치 않는다.
“평소 ‘몸이 바르면 마음도 바르고, 일도 바르게 된다’고 생각하기에 제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질 않아요. 예전부터 꾸준히 해왔거든요. 제게는 삶 속에서 여유를 찾는 여가이자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니까요. 발레나 합창을 하면서 건축할 때 모티브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거든요. 관련 지식이 늘어가는 것도 있고요.”
그는 성공이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꿈이었던 건축가를 택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자신만의 신념과 주관을 토대로 전통적인 한옥의 멋을 살리면서도 편리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박재봉 건축가. 인터뷰를 마치면서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냐고 물어봤다.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건축가 보다는 백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고, 그런 건축물은 만든 건축가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또한, 제가 하는 설계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옳은 게 아니고, 잘못된 점도 분명히 있으니까 주위와 논의하고 의견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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