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필 칼럼] 9월 같은 날들을 떠올려보라(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 입력 2019.09.05 13:37
  • 수정 2019.09.05 18:11
  • 기자명 황용필 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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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은 학문적 대업적과는 달리 가족사적으로는 아픔이 컸다. 강진 땅에 머물면서도 멀리 떨어진 두 아들에게 ‘폐족(廢族)’임을 잊지 말고 독서와 행실에 각별히 주의를 주곤 했으며 따로 똑같이 유배를 당해 흑산도에 머문 둘째 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초당의 동쪽 언덕에 세워진 천일각(天一閣)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했었다.
  
참척(慘慽)! 참혹할 참(慘)에 슬퍼할 척(慽)이 연이은 이 단어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가리키는 말로 어떤 상실보다 큰 아픔이기에 오히려 불효로 친다. 이는 동서를 막론하기에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는 성자 예수를 품에 안고 애통해 하는 성모 마리아의 고통을 표현한 걸작이다. 
1798년 9월, 다산은 세 살 난 어린 자식의 죽음을 유배지 곡산(谷山)에서 들었다.  
정수리에서 이마까지 자신을 빼닮아 더 귀여워했던 아이를 다산은 세 가지 기쁨을 담았다하여 삼동(三童)이라고 불렀다. 이 금쪽같은 아들이 천연두로 죽자 다산은 광주 땅 조곡에 묻으며 다산은 비통의 심경을 글로 썼다.

“네 얼굴 숯처럼 타버려 (無復舊時嬌顔, 무복구시교안)/
다시는 귀여운 얼굴 볼 수 없다(嬌顔恍忽難記, 교안황홀난기)”며 운을 뗀 뒤
“네 혼은 눈처럼 깨끗하여 (爾魂潔白如雪, 이혼결백여설)/ 
훨훨 날아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飛飛去入雲間, 비비거입운간)”가눌 수 없는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父母淚落潛潛, 부모루락잠잠)”고 애곡했다.

스푸마토(sfumato), 미술 회화에서 색을 미묘하게 연속 변화시켜 물체의 윤곽을 엷은 안개에 싸인 것처럼 차차 없어지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뜻의 이태리어 ‘sfumare’에서 유래한 이 기법은 르네상스 시대 천재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걸작, <모나리자(La Joconde, portrait de Monna Lisa)>에 등장한다. 여인의 입 가장자리와 눈꼬리를 스푸마토 기법으로 묘사하여 모호함과 신비로움을 더한 초상화는 세로 77㎝, 가로 53㎝의 유채(油彩) 패널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었다.

그런데 이 <모나리자>가 1911년 대낮, 루브르미술관에서 도난을 당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왜 조국 이탈리아에 있어야 할 명작이 프랑스에 걸려있어야 되는지에 울분을 품은 한 작업공 청년에 의해 너무도 손쉽게 빼 돌려졌다.
2년 후 되찾기까지 <모나리자>가 없어진 그 흔적을 보기 위해 평소보다 6배에 달한 관광객들이 박물관을 찾았고 언론은 연일 도난사건을 보도했으며 사람들은 모이면 모나리자를 얘기하고 웬만한 가정엔 모나리자 그림이 벽면을 장식했다. 
늘 곁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 건강들도 제자리에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도 없어진 상태에서는 더욱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간절함 때문이리라. 

공교롭게 최근 자식을 앞세우고 감내하기 힘든 슬픔을 견디는 두 가정을 만났다. 
때마다 시마다 더욱이 명절 때면 어렵게 아문 기억은 슬며시 다가온다. 
나이 들면 수구초심인지 옛 친구와 고향이 그립다. 그래서 오랜만의 동창들 모임이나 향후모임에도 발길이 잦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미국으로 이민 가 성공했다는 소문도 듣는다. 볼 수 없는 얼굴들이기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만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딘가 살고 있다는 기별하나로도 결코 슬프지 않다. 뜸한 만남은 또 어떠한가?
객지에 떨어져 사는 장성한 자식들이 시골 고향집에 홀로 사시는 늙은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1년에 명절 한두 번, 20년 남은 노모와의 시간일지라도 막상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시간은 하루거리 남짓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말이다. 자연현상도 원인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존 밀림 속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베이징의 날씨를 변화시킨다. 사람, 일, 물건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다는 법이다. 그때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알 수 없는‘내일’보다는 ‘지금(Now)’이라는 시간에서 ‘여기(Here)’를 붙잡으려고 애써야 한다. 

삶의 종착에서 생을 돌아보기보다 12월의 어느 날 문득 삶이 여유롭고 부드러웠던 9월 같은 날들을 떠올려보라.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Profile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치학박사 
「걷기 속 인문학」 저자

前 국민체육진흥공단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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