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예이랑게르 피오르드 (Geiranger Fjord)

'노르웨이 관광의 골든 루트’

  • 입력 2019.09.27 17:16
  • 수정 2019.09.27 17:20
  • 기자명 김석기 작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침 일찍 오따(Otta)를 출발한 버스는 출발과 동시에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 속으로 들어선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숲속에서 새벽잠을 깬 요정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안갯속에서 삼각형 모양의 녹색 나무와 알록달록한 요정들의 집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나타난다. 예이랑게르를 찾아가는 스웨덴 출신 버스기사 '마티스' 씨가 새벽잠에서 막 깨어난 듯 두 눈을 비비며 하얀 안갯속으로 들어선다. 요정들이 그려놓은 굽은 길 따라 조심스러운 산행이 시작된다.  

버스가 넓은 은빛 호수와 함께 어우러진 고요한 풍경을 뚫고 가끔씩 나타나는 아름답고 외딴 집들을 지나간다. 산꼭대기 외딴 집 마당에서 펄럭이는 노르웨이의 깃발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부르는 간절한 손짓처럼 보인다. 깃발이 펄럭이는 집에는 사람이 있다는 증표라고 한다. 산 중턱에 있는 외딴집 마당에는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집 주인이 아직 휴가를 얻지 못 했나 보다. 군데군데 산꼭대기에 매달리 듯 까마득하게 보이는 별장들이 외롭지만 아름답게 보인다.   
산비탈을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기온은 내려가고, 달리는 차창 곁으로 채 녹지 못한 하얀 눈덩어리들이 나타난다. 지난 겨울 내린 눈이 녹지 못하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면서 빙하로 변신하고 있는가 보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흘러간 시간이 벌써 세 시간이다. 고갯길 정상을 향해 아름다운 숲속을 한참 더 달리던 버스가 해발 1030m라고 이정표가 새겨진 휴게소 앞에 멎는다. 산꼭대기 휴게소 곁에 맑고 넓은 호수가 마치 평원처럼 펼쳐지고, 호수 위에 두둥실 빙하 덩어리가 출렁이고 있다.      
물안개가 바람에 흩날리는 산상의 기온이 제법 쌀쌀하여 옷깃을 여미게 한다. 북유럽은 일교차가 심하여 햇볕이 나면 한여름이다. 그러나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가을이고, 아무리 뜨거워도 산에 오르면 겨울이 된다. 기온차가 심하기도 하지만 햇볕은 즐길 수 있는 날들이 부족한 이 지역에서는 일광욕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항상 긴 옷을 준비해 가지고 다니면서도 햇볕을 기다리고, 해가 뜨면 옷을 벗고 잔디에 누워 뒹굴며 일광욕을 즐긴다. 
산 정상의 반대쪽에서 가끔씩 올라오는 차량들이 하얀 물안개를 털어내며 추운 나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스턴트맨같이 춥게만 느껴진다. 

휴게소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따뜻한 한 잔의 차로 몸을 덥히면서 북유럽의 상쾌함을 만끽한다. 그렇게 북유럽의 여행을 하고 싶다던 아내의 소원이 풀린 이유 때문일까? 밝고 즐거운 그의 얼굴 표정이 아름답기만 하다. 
예이랑게르 피오르드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다시 출발한다. 버스가 내리막 굽이 길로 들어선다. 하얗고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로 속으로 버스가 조심스럽게 뒤뚱거리며 들어간다. 항상 밝고 침착하게 보이던 마티스 씨도 긴장이 되는 얼굴 표정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어떻게 내려갈지, 차들이 교행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좁은 길이 180도의 급회전 길로 자주 바뀌고, 급경사가 나타나는 어려운 도로 상황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버스 기사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예이랑게르 피오르드_김석기 작가
예이랑게르 피오르드_김석기 작가

드디어 하얀 물안개 터널을 무사히 통과한 버스가 멀리 발 아래로 노르웨이의 보석 예이랑게르가 희미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멎는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신비스러운 예이랑게르 피오르드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한쪽 편에서 스케치북을 펴고 서둘러 아름다운 풍경을 옮겨 보지만 어찌 짧은 시간에 아름다운 풍경을 옮길 수가 있겠는가?    
오따를 출발한지 4시간 만에 예이랑게르 피오르드 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에 거대한 유람선이 기다리고 있다. 버스도 싣고, 사람들도 모두 태운다. 옥상 갑판으로 올라가 한쪽 의자에 자리를 잡고 스케치 북을 편다. 마치 육상선수가 100m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듯 펜 뚜껑을 열고 유람선의 경적을 기다린다. 드디어 유람선이 경적을 울리며 출발하고 나는 스케치를 시작한다. 
예이랑게로 피오르드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탄성은 끝이 없다. 1,000미터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예이랑게르 피오르드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피오르드 중 하나다. 주변의 높은 산 위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절벽폭포 중 7자매 폭포의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은 이곳에서도 가장 뛰어난 절경이다. 7자매 폭포수 아래를 지나는 유람선 갑판 위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함성을 지른다.   

민속가옥_김석기 작가
민속가옥_김석기 작가

예이랑게르에서 헬레쉴트까지 운행되는 유람선 양쪽으로 폭포수의 퍼레이드는 끝이 없고, 하늘을 나는 이름 모를 하얀 새로 변신한 물거품은 구름과 안개와 뒤범벅이 되어 또 하나의 절경을 만든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언제 끝나는지도 모르는 폭포수들의 퍼포먼스는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계속된다. 멈추게 할 수도 없는 자연의 신비는 아마도 빙하를 만드는 겨울의 여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인 듯싶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감탄사들이 모여 코러스가 되고, 엇갈리는 탄성은 물보라 속으로 스며들어 이제 유람선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만든다. 예이랑게르 피오르드의 추억을 뒤로하며 조그마한 스케치북에 옮긴 폭포의 물줄기를 다시 보면서 울렁이는 가슴의 흥분과 선명한 추억을 되새겨본다. 북유럽에서 느끼는 피오르드의 아름다운 신비는 무궁무진한 자연에 대한 동경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하다.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