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우리는 왜 목숨 걸고 자녀 교육을 시킬까

  • 입력 2019.10.14 22:03
  • 수정 2019.10.14 22:04
  • 기자명 원동인 SPR교육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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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건으로 촉발된 논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장관 딸의 고려대 입학 논란, 서울대 대학원 장학금 논란, 부산대의전원 장학금 논란, 동양대 표창장 논란 등에 더해, 제1야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아들을 불법으로 조기유학을 보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또 그 아들의 대학진학을 위해 국립 서울대 시설과 장비 등을 사사로이 사용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이들을 통해 주류급 상류층의 기득권 세습을 위한 온갖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우리 사회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아이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이가 없다는 뉴스는 이제 당연시 여겨져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승자독식 사회', '소득 양극화 사회' 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 중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계층의 소득 집중도는 2016년 기준 43.3%로 1996년 35%에 비해 8.3% 상승했다. 우리나라 상위 1%의 소득 집중도도 1996년 7.8%에서 2016년 12.2%로 높아졌다. 소득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승자가 거의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소득 양극화는 출산율에도 나타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저출산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격차에 따른 혼인·출산율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7∼2018년 국민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분만 건수가 소득이 낮을수록 떨어졌다는 것이다. 소득 1분위(최하위 10%)에서 분만 건수가 7.67%에서 4.99%로, 3분위에서 7.70%에서 5.56%로 떨어졌다. 반면에 소득이 높을수록 분만 건수가 증가하여 8분위에선 12.41%에서 14.12%로, 9분위에서 7.81%에서 9.72%로, 10분위에선 4.96%에서 5.33%로 올랐다. 출산율도 소득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원래부터 소득 불평등이 이렇게 심각했던 것은 아니다. 1995년만 해도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이 32%에 불과했다. 북유럽 선진국 국가들의 28%에 비하여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랬던 것이 1997년 외환위기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우리나라 시장과 경제에 대한 자유화 요구를 제도화하면서 승자독식 체제가 구조화되었다. 당시 상황을 보았을 때, 외환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는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가 진보정권에 의해 고착화되었다는 것도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승자독식사회에서 구성원의 삶은 고단하고 황폐화된다. 예를 들어 서열화된 대학 학벌 사회에서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피폐한 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같이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남이 나보다 더 가지는 것은 참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 환경 속에서 갖지 못한 이들은 가진 이들을 증오하고, 가진 이들은 갖지 못한 이들을 경계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도시와 농촌,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숱한 사회적 갈등의 근저에는 승자독식의 경쟁원리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직장을 잡을 때 대기업을 고집하는 이유도 승자독식 사회가 낳은 결과물이다. 우리는 첫 직장이 어디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바뀐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전도 유망한 벤처기업에서 일했거나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증명했다고 해도, 이직 땐 대기업 출신보다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대기업만 고집하는 것이다. 대기업 예찬론은 명문대 예찬론과 상통한다. 명문대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고 보니 대학입시에 올인 하게 된다. 자식들을 '승자의 반열' 위에 올리기 위해 부모들은 엄청난 희생과 경제적 출혈을 감수한다.  
이러한 부모의 욕망과 사회의 분위기는 아이들의 '공정한 경쟁', '기회의 균등'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예를 들어 보자.

아빠1 & 아이1 : 능력 있는 아빠1은 국제화 시대 영어가 중요하다는 명분 아래, 7세 때부터 아이1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집에서 영어책을 읽어줌. 초등학교 입학 후에도 영어 사교육 및 집에서도 아빠가 영어는 별도 지도하며 초등학교 졸업.
아빠2 & 아이2 : 형편이 어려운 아빠2는 국가 공공교육 시스템에 의지하여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영어 교육을 시작. 아이2는 영어 사교육 없이 초등학교 졸업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1, 아이2가 고3수험생이 되었을 때, 공정한 입시경쟁을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아빠를, 국가를 선택할 수 없다.
국가는 아이 입장에서 정말로 공정한 입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자기 아이가 명문대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망을 국가가 통제할 수 있을까?

이번 조국사태로 아이의 입장에서의 공정한 교육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고인물은 썩듯이, 순환하지 않는 승자독식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 언제가 폭발할 것이고 사회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 경쟁은 공정한 경쟁이어야 한다. 필자 공정한 경쟁은 기회의 균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설령 패자가 되더라도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워져야 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부가 그리고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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