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애 칼럼]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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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윙이라는 소셜 댄스를 다시 추기 시작했다. 스윙댄스는 십 년 전에 처음 접했는데, 스윙 노래에 맞춰 파트너와의 커넥션 안에서 밀고 당기며 추는 재미난 춤이다. 서로를 리딩하고 팔로잉 하는 데로 다양한 모양이 만들어지는 게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로부터 4년간 거의 매일 춤을 추었다. 주 7일을 스윙 동호회 사람들과 모여 함께 춤을 배우러 다녔다. 당시 사람들 중엔 회사를 그만두고 올인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춤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고 학구적이기까지 했다. 모이기만 하면 춤 이야기로 시끌거렸다. '누가 예쁘게 추느니, 잘 추느니, 어떻게 춰야 하느니'를 두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나는 크게 기억나지 않을 이유로 그간의 열정이 무색할 만큼 춤에 대한 발길을 끊어버렸다. 우연한 계기로 난,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블랙홀이었던 스윙 판을 정리했다. 여러 번의 삶의 전환과 변화를 겪어내고 마음이 한가로워지자 그때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시끌벅적했던 에너지가 그리웠다. '그때 왜 내가 그만두었지?'. 뒤늦게 묻기 시작했고, 결국 스윙화를 챙겨 동호회를 찾아갔다. 다시 스윙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멈추었던 춤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신이 났다. 끝나버렸던 스윙은 통통 거리는 바운스를 통해 살아났다. 그렇게 몇 달 즐거운 중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았다. 날아다닐 듯하던 몸도 어느 날은 무겁고 둔탁하게 느껴졌다. 다시 시작된 스윙댄스는 신나는 것만 있진 않았다. 다양한 이들과 함께 춤을 추려면 어느 정도 사교적이어야 한다. 맘에 들지 않는 이들과도 춤을 추면서 내색하지 않는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재능 있고 빛이 나는 몇몇과 비교되는 것에 쿨해져야 하며, 맘처럼 되지 않는 몸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도 수용해야 했다. 재미가 보장되지는 않는 뒤풀이도 있고, 취미생활을 유지해야 하므로 생기는 물리적 심리적 기회비용도 생긴다. '아 맞다! 오 년 전 그때도 그랬어.' 잊고 있던 그때의 무겁던 정서가 되살아났다. 보란 듯이 다시 과거로 소환되었다. 

알 수 없는 묘한 감정들은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공간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설렘과 함께, 과거에 느꼈던 속수무책의 감정도 원 플러스 원으로 배달되었다. 그 껄끄럽고 깔깔한 무엇인가가 마음에 신호를 보낸다. 불편하다고. 미해결된 이슈가 있으니 해결해 달라고.

가만히 보니 무엇인가 꽤 많은 것들이 춤이 멈춘 곳에서 접촉되고 있었다. 춤에 대해 과도했던 열기, 생활을 도외시하느라 꼬여버린 일정들, 경쟁의 치열함에 지쳤던 마음, 비교에 담대하지 못하고 움츠러들던 소심함, 타고난 춤꾼들에 대한 시기, 질투, 그리고 서툴렀던 인간관계들. 그러함 들은 거대한 파도처럼 덮쳐왔고, 감당치 못하게 되자 마치 아무것도 시작한 적 없던 사람처럼 나는 그곳에서 꼬랑지를 내빼고 도망쳤던 것이다. 멈춘 길목을 따라가니 사실은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든 현실을 회피하고 싶었던 비겁한 내가 서있더라. 아! 그때 나는 힘이 없었다. 정면승부는 무리였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역사는 되풀이된다. 도망쳐도 삶은 얄궂다. 다시 그 순간 앞에 우리를 세워둔다.

 

그래, 우리는 매 순간 다시 반복되는 시작 앞에 서있다. 이때 우리는 지금 내가 어디에서 다시 시작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삶은 매번 시작과 끝이 무한히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순간순간 우리는 수없이 무엇인가를 끝냈다 다시 시작하고 있다. 소원했던 친구와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헤어졌던 인연과 재회한다. 누군가는 학업을 다시 시작하고, 또 누군가는 일자리를 다시 찾는다. 어떤 이는 종교적 신념으로 삶을 새롭게 만들려고 매일 노력한다.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때 그저 호기로운 시작에만 의미를 둔다면, 어쩌면 과거 굴욕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지 모르겠다. 재시작이라는 것 앞에는, 과연 언제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그 멈춘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용기도 함께 필요함을 느낀다. 연애에 실패하고, 아이를 기르는데 실패하고, 결혼 생활을 실패한 이가 있다. 부모를 섬기는데 실패하고, 직장에서, 사회에서, 관계에서 우리는 다양한 실패를 경험함으로 우리는 멈추어 버린다. 그 한가운데서 우리는 다양한 나를 만날 수 있다. 상실한 나. 웅크린 나. 좌절한 나, 배신당한 나, 상처받고 구겨진 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선 실패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설렘과 들뜬 마음을 소중히 하되, 동시에 멈춘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서의 정서를 다시 만나자. 그것이 우리의 삶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게 하고 우리의 역사를 흐르게 하고 건강함 위에 진정한 새 시작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아주 오래전 시골 아이들은 마당에서 '얼음땡'이라는 놀이를 하며 자랐다. 얼음을 외치면 술래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시 땡을 해주기 전까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마치 그것과 같이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들이 '얼음'인 상태로 멈춰있다. 살기 위해 얼음을 택하지만 결국은 멈춘 마법을 풀어주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다. '땡'하고 풀어주기 전까지 삶은 멈춘 것 투성이다. 진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멈춘 것을 흐르게 하여야 한다. 흐르게 한다는 것은 그때로 돌아가 그때의 정서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때 애도하지 못했던 것, 그때 위로하지 못했던 것, 그때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과 다시 접촉하라. 희망적인 것은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를 회피하고 도망쳐버리던 감정들과 마주할 힘이 생겼다. 겁먹지 말고 맞짱 떠보는 것이다. 나는 다시 스윙을 춘다. 겁 없이 스텝을 밟고 두려움에 덜 메이고 나니 조금은 더 자유로워졌다. 내 꿈이 함께 춤을 춘다. 

Profile 
(사)한국코치협회 인증 프로코치 KPC(Korea Professional Coach)
연세대 상담코칭학 석사
에니어그램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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