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에 담긴 60년이라는 세월, 전주우족탕의 진심과 정성

김판쇠 전주우족탕 김동우 대표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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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맛의 고장 전주를 든든히 지키며 '우족탕'을 알리고 있는 김동우 대표는 아버지 김판쇠의 뒤를 이어 2대째 '김판쇠 전주우족탕'을 운영하고 있다. 마치 베풀기라도 하듯 맛과 영양이 넘치는 우족탕을 전주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대접하고 있는 김동우 대표는 늘 한결같다.

한결같이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위해 휴일도 반납한 채 애쓰는 김 대표의 길에는 함께 걷는 가족들이 있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 했는가. 늘 겸손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베풀 줄 아는 김동우 대표에게는 그와 똑 닮은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있다. 아버지 곁에 어머니가 계셨 듯, 김동우 대표 곁에는 항상 힘을 실어주는 아내가 있었다.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전주한옥마을 향교 일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표 음식관광축제 '전주비빔밥축제 2019'에 참가한 '김판쇠 전주우족탕' 김동우 대표와 그의 가족을 만나봤다.

 

'집념' 1대 김판쇠, '우족탕'의 맛을 알리다
열여섯 살 때부터 남의 집 생활을 하면서 일찌감치 한식 요리를 시작한 1대 김판쇠 씨는 마흔 살이 되던 1980년 1월, '전주우족탕'으로 본격적인 음식 사업을 시작했다.

"6살에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외갓집에서 생활하다 나와서 객지 생활을 했습니다. 서른 살에 결혼을 했는데 고생도 많이 했어요. 아내를 잘 만났죠.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아쉬운 소리 않고 살았어요."

'전주우족탕'을 개업하기 전까지 어딜 가나 내 것처럼 일했던 김판쇠 씨는 손이 빠른 데다 요리 실력도 훌륭해 전국 방방곡곡의 음식점을 일으켜 세우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성실히, 묵묵히 일하니 자연스레 사람들도 뒤따랐다. 실제로 '전주우족탕' 개업 당시, 전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축하의 발걸음을 하며 김판쇠 씨를 응원했다고.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자기 옷 한 벌 사려는 생각 없이 장사만 알고, 너무 고생하다 보니 50대 초반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20년 동안 아들, 딸이 열심히 간호하고 있어 고맙죠." 

김판쇠 씨를 똑 닮은 아들 김동우 대표는 20년 가까이 직접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효자다. 김판쇠 씨는 인터뷰 내내 아들 김동우 대표의 선행을 언급했다.
"아들이 참 잘해요. 부모 없이 고생하는 280명가량의 아이들과 양로원에 계신 어르신들께 매월 식사를 제공하고, 매해 명절 때마다 소외된 이웃들에게 쌀 40~50가마를 보내고 있어요."
다른 음식이라면 모르겠지만, 전주에서 탕을 먹을 거라면 '김판조 전주우족탕'에서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던 김판쇠 씨.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면 나중에는 진짜 가족이 되어 돌아온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오늘도 김판쇠 씨는 2대 김동우 대표, 손자인 3대 김정민 씨에게 '우족탕'에 대한 자부심과 나눔의 미학을 가르치고 있다.

 

'정성' 2대 김동우 대표, '우족탕'의 품격을 살리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 인생을 다 바쳐 일궈온 사업체이지 않습니까. 가업을 잇는 건데 허투루 할 수 없죠. 아버지 때는 아버지의 음식이 최고였지만,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위생관념이 바로잡히지 않았어요. 제 세대에는 전주우족탕을 고급화해 손님들이 좀 더 대접받는 기분이 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1대 김판쇠 씨도, 3대 김정민 씨, 그리고 아내 박경축 씨 모두 '김판쇠 전주우족탕'의 맛과 성공의 비결에 김동우 대표의 정성을 꼽았다. 베푸는 것 자체가 행복인 김동우 대표는 어떤 이유로 이토록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가업을 잇는 데에는 책임감이 가장 중요했다. 가족이 아닌 사람과도 일해봤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자기 성씨를 딴 간판을 만들고 싶어 했다고. 다들 사장이 되고 싶어 할 뿐, 종업원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던 것. 김동우 대표는 알고 있었다. 종업원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아가야 일하는 분들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을뿐더러, 진정한 사장이 된다는 것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나누는 마음으로 임하면 많은 분들이 와주시고 인정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식당이라는 게 손님들이 와주셔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손님들이 찾아주셨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을 수 있었고, 제가 이어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받은 것들을 지역 분들에게 돌려드리는 게 마땅한 것 같아요."

불 조절만 잘못해도 맛이 달라지는 우족탕 육수. 이 때문에 김동우 대표는 늘 쪽잠을 잔다. 편안한 생활을 거부하면서까지 음식의 완성도를 위해 애쓰는 김 대표는 바쁜 일정을 쪼개 다양한 기부 활동과 자선 사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풀수록 더 행복해지더라고요.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더 베풀고, 좋은 마음씨를 가진 분들이 많은데 방송에서는 잘 다뤄주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께 주변에 알리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어두운 줄로만 아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100년 전통 가게'를 일구는 것이 소원이라는 김동우 대표는 자신을 비롯한 명인들을 대표해 고민을 토로했다. 가게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음식에 대한 철학도 훌륭하며, 맛 또한 우수하지만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는 것.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직접적인 강요는 아니지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음식에 대해 경험하는 기회를 주고 있어요. 어쩌면 반 강요가 되는 거죠. 하다 보면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결국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되면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인생' 3대 김정민, 타고난 음식쟁이

김동우 대표의 아들인 3대 김정민 씨는 타고난 음식쟁이다.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있는 김정민 씨는 현재 양식에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우족탕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아버지인 김동우 대표 못지않아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요리하는 걸 봐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요리사를 꿈꾸게 됐어요. 중간에 다른 걸 해봤는데 다른 건 금방 질리더라고요. 주 종목은 양식이지만 한식도 하고 있어요. 아직은 학생이라 다양한 걸 경험하고 배워보고 싶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노고를 가까이서 지켜본 김정민 씨는 아버지처럼 봉사는 할 수 있어도 그만큼 정성을 쏟을 자신은 없다고 말했다. '김판쇠 전주우족탕'은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있기에 명절에도 부모님이 마음껏 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김정민 씨. 가족 모두 같은 날 함께 쉬거나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나는 이 일을 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지만 요즘 들어 부모님을 도와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고.

"가업을 잇겠다 결심한지 안 한 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직 어린 나이기도 하고 다양한 요리를 배워보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걸 해보고 나면 결정이 나겠죠. 부모님이 부담을 주시지는 않지만 스스로 부담이 느껴져요. 부모님께서는 꼭 이어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전주우족탕'의 기둥, 김효순 여사와 며느리 박경축 씨

'전주비빔밥축제 2019'를 통해 아들과 함께 3대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데에 가장 큰 기쁨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2대 김동우 대표의 아내이자 1대 김판쇠 씨의 며느리인 박경축 씨였다.

"아들과 함께해서 정말 좋고 든든해요.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요. 저희 신랑도 만능인데, 아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20년 동안 남편이 모시고 있는데, 아들이 바쁜 남편을 대신해 제 보호자 역할을 많이 해줬어요."

흔히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에게 '손에 물 안 묻히겠다'라는 말을 하는데, 실제로 김동우 대표는 아내 박경축 씨의 손끝에 물을 묻힌 적이 없다. 박경축 씨는 그저 가게의 꽃처럼 카운터에서 관리만 한다고. 

"저희 집 비결은 정성이에요. 남편 마음에 안 들면 육수를 전량 폐기하기도 하죠. 지금은 경지에 올라서 그런 일이 없지만, 처음에 할 때는 마음에 안 들면 버렸어요. 그 아까운걸."

김동우 대표와 박경축 씨 부부는 서민 음식이던 우족탕을 고급화하기 위해 좋은 자료를 쓰고, 정성을 다했다. 좀 더 정성껏 대접하고 싶어 손으로 직접 빚은 고급 그릇을 쓰는 등 작은 것부터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다.

"요즘에는 배고파서 한 끼 때우려고 먹는 음식이 아니잖아요. 눈으로, 맛으로 대접받는 느낌을 드리기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 남편 육수는 정말 자부할 수 있어요."

인정받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기에, 아들이 요리하는 건 원치 않았다는 박경축 씨. 하지만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갑작스러운 큰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사고 이후 아들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응원해주겠노라 다짐했다던 박경축 씨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져있었다.

"아들에게는 많이 미안해요. 여행을 한 번도 못 갔거든요. 언젠가 아들이 자기는 나중에 종업원 100명을 쓸지언정 절대 아내에게는 일을 안 시키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어릴 때 아빠, 엄마랑 하고 싶었던 게 있었나 봐요. 같이 일하는 게 즐겁긴 한데 가족 전체가 쉬어본 적이 없으니 미안하죠. 그걸 불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밤 12시에 나가서 야식을 먹거나 심야영화를 보더라도 즐겁고 행복해요."

 

감사하며 베풀 줄 아는 삶
김동우 대표 내외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려’로 꼽았다. 봉사와 나눔은 전염된다며, 봉사 후 느껴지는 희열을 많은 분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김동우 대표. 그리고 그 곁에 선 아내 박경축 씨는 아들의 행복과 가정의 번영을 위해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양보하면서 이해하는 게 가장 편하지 않나요? 남의 눈에서 피눈물 빼면 내 자식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양보하면서 살아야 아들이 잘 된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지금 이 시간에도 김동우 대표와 박경축 씨는 뜨거운 열정과 정성이 담긴 한 그릇을 위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든든하고 맛 좋은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집념이고 정성이며 인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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