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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의 미술여행] 터키 파묵칼레(Pamukkale), "세계적인 온천 휴양지 파묵칼레"

기사승인 2021.01.30  00: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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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묵칼레의 풍경_김석기 작가

세계적 관광지이며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파묵칼레는 "솜(綿)의 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이 목화솜의 성이라 불리는 이유는 하얀 석회붕으로 장대하고 화려한 백색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어서 그런 듯싶다.  
  
파묵칼레로 들어서면서 민가의 지붕 위에 빈 병이 하나, 혹은 두 개가 올려있는 이채로운 풍경을 발견한다. 빈병의 사연이 파묵칼레 마을의 아름다운 결혼 풍습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 파묵칼레 가는길에서_김석기 작가

이 마을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은 딸의 숫자만큼 지붕 위에 병을 올려놓아 과년한 딸이 결혼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려 결혼 대상자를 찾고 있다는 광고의 역할을 한다. 병을 보고 혼인 말이 오가게 되면 신랑 신부가 될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상견례를 갖는데, 이때 아버지는 상견례에 절대 참석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마지막 가문의 자존심을 지키는 가장의 자세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상견례는 남자가 여인의 집을 방문하여 여인으로부터 차(茶) 대접을 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여인이 준비한 차에 설탕이 듬뿍 담겨 있으면 결혼을 수락한다는 좋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아직 결정할 수 없는 단계라면 아무것도 타지 않고 차를 대접한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는 소금을 탄 차를 대접하여 처녀의 심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예를 갖춘다. 결혼이 성립되면 남성은 여인을 데려오는 대신 지참금을 준비해 여인의 집에 제공해야 한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파묵칼레는 예로부터 노인들이 심장병이나 고혈압 등의 질병으로 건강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경우 모든 가산을 정리하여 이곳으로 이주해 온천욕으로 치료를 했다고 한다. 병을 고치고 나서는 파묵칼레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곳이 너무 좋아 그대로 눌러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죽어서 이곳에 묻히는 사람들도 많았다.

 

▲ 파묵칼레 야외온천_김석기 작가

  
호텔에는 남녀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온천장이 있다. 넓이는 그리 넓지 않으나 깊이는 1.5m 정도로 깊다. 온천장의 바닥에는 진흙 같은 것이 발에 밟혀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그것이 석회석 성분의 일부라고 한다. 온천탕은 실내와 실외로 구분되어 있다. 실외의 노천탕은 바깥 기온 때문에 온도가 낮지만 밤하늘의 별빛 아래서 온천욕을 하며 곁에 있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낭만도 있다.
  
한국에서 한때 터키탕이라는 목욕문화가 음란성의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터키인들은 청결과 목욕을 중시하여 목욕 문화를 발전시켰다. 한국인들이 잘못 이해한 터키탕의 문화에 대해 터키인들은 불쾌한 감정을 갖고 있다. 터키의 목욕탕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물을 담아놓은 냉탕, 온탕 등의 물탕이 없다. 그 대신 목욕탕 가운데에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커다란 찜질대가 있다. 그 바닥의 온도가 매우 높아 마치 뜨거운 온돌방을 생각나게 한다. 신경통 계통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젊은이가 올리브유를 사용하여 단조로운 마사지를 해주는 체험 속에서 터키의 색다른 목욕 문화의 묘미를 느낀다.   

 

▲ 파묵칼레의 아침_김석기 작가

  
파묵칼레의 온천수는 히에라포리스로 올라가는 입구의 원 탕에서 출발한다. 이곳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오가 목욕을 즐긴 곳이다. 그들이 목욕을 즐겼던 원 탕 부근은 상업을 위한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도 온천수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샘솟고 있다. 그곳으로부터 매우 긴 거리를 수로를 통하여 온천수는 이동된다. 온천수에는 석회 성분이 함유되어 하단부로 이동하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엉켜 굳어져 거대하고 하얀 석회 붕을 형성하면서 대지 전체를 뒤덮어 커다란 백색의 산을 만든다. 온천수의 온도는 흘러 내려갈수록 낮아지지만 수로를 통해 흐른 물은 곳곳에 붕을 만들고, 거대한 노천탕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낸다. 우리들의 상상력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절경이 연출된다. 또한 그 스케일이 거대하여 직접 보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석회 붕 아래쪽으로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는 곳에 마을이 있다. 별장과 같은 올망졸망한 아름다운 주택들이 모여 이상향과도 같은 동네를 이루고 있다.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히에라포리스는 B.C 190년에 건조된 석조 건축형 도시로서 마치 에페스를 재현한 듯한 분위기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들은 내륙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아름답고 웅장한 것은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원형극장이다. 원형극장은 거대한 석조의 아름다운 문양과 독특한 기둥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황제가 중앙에 위치하는 엄숙한 로마제국의 위엄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지고 또 검투사들의 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아직도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둥근 관객석 중앙에 자리 잡은 황제의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얼굴 표정이 마치 로마제국의 귀족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원형극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되어 있다. 증기목욕탕이나 돌을 쌓아 만든 벽들과 기둥들이 지진으로 파괴되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히에라포리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 히에라포리스에서_김석기 작가

  
히에라포리스의 원형극장에서 오른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에 기독교 전도를 하다 순교한 빌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빌립보 교회가 있다. 
  
파묵칼레의 하얀 산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중턱에서 돌들의 유적들이 뒹구는 거대한 고분군을 만난다. 고대 귀족들의 석관묘지의 잔해들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이곳이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국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거대한 무덤의 군락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권세를 누렸던 귀족들이 이곳에서 많이 살았었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당당한 권세를 갖고 세상을 호령하였다 하여도 그들은 모두가 한 줌의 흙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김석기 작가 ksk0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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