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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예술의 수호자, 통섭의 시대를 그리다

기사승인 2021.05.17  11: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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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랑 이종상 화백

한복과 김치를 자국 문화유산이라 주장하는 중국의 ‘문화 동북공정’이 날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행태는 최근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고구려·발해·고려 등을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왜곡을 일삼아왔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사를 바로 알고, 깊이 알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 역사와 문화를 지켜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일랑(一浪) 이종상 화백은 일찍이 예술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수호해왔다. 이종상 화백 그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3년 연속 특선을 이어왔으며 한 최연소로 24세에 추천작가로 입문한 이후 우리의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고 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왔다. 1960년대에는 문화영토론에 입각하여 고구려문화지키기운동을 펼쳤으며, 이어 1970년대에는 국내 최초로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독도문화심기운동’ NGO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한학자 월당(月堂) 홍진표 선생이 지어준 그의 아호, 일랑(一浪)의 의미에 걸맞게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발전에 큰 물결을 일으킨 이종상 화백을 집중 조명해본다. 

 

지금의 일랑을 만든 인생의 조력자
이종상 화백의 천부적인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선친 이간재 선생은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응로 선생과 함께 일본으로 그림유학을 떠나려다 집안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고 만다. 

“어린 시절 집 담장 안에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아홉 칸의 작은 동물원이 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동물원에는 금계, 칠면조, 거위 등 두발 달린 동물들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틈만 나면 그 우리 안에서 움직이는 동물들을 그리곤 하셨지요. 배우지 않고도 속사(速寫) 즉, 크로키를 체득하신 것이지요. 이는 미대생들도 굉장히 어려워하는 기술입니다. 보통 사람에게 잔재영상은 16분의 1초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를 16초, 16분, 16시간으로 늘리는 게 화가의 능력이지요. 속사, 즉 크로키 연습을 체득하신 겁니다. 제가 서너 살 때부터 아버지 옆에서 크로키를 흉내 내면서 자연스레 그림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지요.”

▲ 원형상-독도의 소리III (2003)

이 화백의 두 번째 조력자는 그의 어머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던 당시, 부친은 잡작스레 작고하였고, 6·25전쟁 발발로 인해 충남 예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광주리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으나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들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어머니는 어렵사리 아들을 대한불교 보문종 재단의 보문중학교에 입학시켰다. 

이후 대전의 명문인 대전고등학교에 당당히 진학했고, 그 곳에서 세 번째 조력자를 만난다. 박관수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이종상 화백은 어려운 집안 형편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취직이 용이한 서울공대 건축과로 진로를 정했으나, 박관수 선생의 영향과 권유로 미술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화가로서의 꿈을 다잡게 된다.

“박관수 선생님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구적 안목을 갖고 계신 훌륭한 교육자셨어요. 멀지 않은 미래에는 취미가 직업이 되는 시대가 오고, 미술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빛을 볼 것을 예견하시고는 꼭 미대에 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어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예술계로 이끈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능과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과 스승의 선구안이었다. 여기에 더해 부부의 연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한 아내, 성순득 여사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없었다고 덧붙이는 이종상 화백이다. 

“아내 또한 이화여대 동양화를 전공한 예술인입니다. 초기에는 함께 작품 활동을 했으나, 생계가 어려워지자 아내는 붓을 내려놓고 온전히 내조에 집중해주었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는 두 명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어냈고, 아내는 제 작품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껴야 했지요. 아내의 희생과 봉사가 없었더라면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혼자서 이뤄낸 명성과 결과물이 아니기에 늘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렇게나마 표현을 해봅니다.”

 

▲ 20080613-해군광개토대왕함 명예함장수여식을 마치고 함선을 배경으로 명예함장 부부와 기념촬영

예술로 새기는 민족의 정체성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3년 연속 특선과 국전 사상 최연소 추천작가라는 영예를 안으며 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종상 화백은 본격적으로 한국 회화의 자생성과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고구려벽화 연구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6·25 전쟁의 여파로 인해 고구려와 고려문화에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북한 정권의 고려연방제를 찬양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던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문화의 뿌리인 고구려·발해·고려 미술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문화영토론’을 바탕으로 한 ‘고구려문화지키기운동’을 통해 역사왜곡과 맞서 싸웠다.

고구려·발해·고려 미술 연구에 앞장선 바, 1977년에는 광개토대왕의 국가 표준영정을 맡아 그리기도 했다. 그가 그린 광개토대왕은 면류관을 쓰고 용포를 입은 모습이 아닌, 비늘갑옷에 투구를 쓰고 칼을 찬 장군의 모습이었다. 이 화백은 고구려 고분에서 찾아 연구한 벽화와 북방 유목민의 생김새, 그들의 생활상을 반영한 묘사였다.

그가 최초로 시도한 것은 고구려문화 연구만이 아니다. 아무도 독도 관심을 두지 않던 시절 직접 독도를 방문해 최초로 독도 진경화를 그려냈고, 독도(DOKDO)를 일본은 물론 해외에 널리 알림으로써 세계 최초의 독도화가이자 독도문화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얼마나 일찍 독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냐고 물어오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나오기 5년 전부터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저는 독도가 가진 문화적 상징성을 깨닫고, 그림을 통해 문화를 심어 이를 세계인에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왜냐, 한 나라의 영토주권은 역사적, 학문적, 무력적 성과만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마음속 깊이 각인돼 일상생활은 물론 예술과 문화로 승화돼 표현되는 자생적인 문화관련 행위 자체가 실효적 영토 주권이며 수호일 것입니다."

 

'접신'의 경지로 그려낸 표준영정

이종상 화백의 화업인생에서 영정제작을 빼놓을 수 없다. 이 화백은 2021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관장하는 정부표준영정 98점 가운데 율곡 이이와 더불어 광개토대왕, 우륵, 원효, 김홍도, 장보고, 나대용 장군, 윤관 장군, 윤선도 등을 제작한 표준영정의 대가라 할 수 있다.

그의 나이 37세에 5000원권을 그리면서 최연소 화폐영정 화가로 이름을 알린 후 30여 년이 지나 또 다시 5만원권이라는 최고액권에 들어갈 신사임당의 영정을 그리면서 모자(母子)의 화폐 영정을 완성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도 사용하는 화폐 속 영정을 그리는 것은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일입니다. 5000원권은 본래 순종 어진을 그린 조선의 마지막 화원 이당(以堂) 김은호 선생이 그리기로 돼 있었으나, 이당 선생께서 병환으로 인해 그릴 수 없게 돼 화폐위원회의 복잡한 심사과정을 거쳐 저를 추천하셨습니다. 당대 최고의 원로대가들이 사이에서 서른일곱 살의 손자뻘인 청년 작가가 맡았으니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지요. 그 이후 31년이 지난 뒤 5만원권을 그릴 화폐영정화가가 필요했고, 저는 이미 한차례 화폐영정 작업을 수행해온 바, 정통영정의 육리배채(肉理北彩)기법을 알고 있을 뿐더러 복잡한 신원검증을 이미 끝마친 유일한 생존작가이기 때문에 최고액권인 신사임당 화폐영정 제작을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지요. 얼굴이란 ‘얼’이 담긴 ‘꼴’을 일컫습니다. 즉 사람의 얼굴은 인품과 혼을 담는 그릇인 셈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초상화와는 달리 영정제작은 혼을 불어넣는 무속의 접신 수준에 속하는 전신사조(傳神寫照)에 천상묘득(遷想妙得)의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초상화는 이름이나, 인품을 몰라도 꼴인 외모는 사진처럼 실제와 똑같이 그릴 수 있지만 영정은 다릅니다. 영정은 그림자 영(影) 자에 족자 정(幀) 자를 씁니다. 그림자가 있는 건 실체고, 그림자가 없는 건 환상인 게지요. 그림자는 대상이 되시는 분의 인품과 업적과 혼을 뜻합니다. 그림자, 즉 대상의 삶의 철학과 정신을 존숭(尊崇)하는 의미에서 액정(額幀) 속에 모시는 게 바로 영정입니다. 영정을 그리기 위해선 그리려는 분의 혼과 접신하여 일치해야 합니다."

 

통섭의 시대 속 예술가의 자세
이처럼 이종상 화백은 표준영정제작에 있어 매우 확고한 철학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일화로 원효대사 표준영정제작기를 꼽을 수 있다.

"원효대사를 그리기 위해선 그의 인품과 업적 그리고 혼을 깨우쳐야 했습니다. 하여 생각한 것이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大承起信論)을 공부하는 것이었지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철학과 원효사상 연구의 권위자 이기영 박사에게 기신사상을 배웠습니다. 원효대사의 기신론을 배우고 동양의 기철학 연구논문으로 10년 만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철학박사 학위를 소유한 국내 화가는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서울대 이기준 총장이 이 사실을 알고는 미대 교수인 내게 서울대박물관장으로 임명하기도 했지요."

그의 말마따나 예술을 하면서 철학을 겸비한 예술가는 극히 드물 터다. ‘전공’의 벽을 철저히 허물어가고 있는 이종상 화백은 ‘원효기신론’을 근거로 ‘통섭’을 강조했다. 

"작금의 대학교육을 보고 있노라면 인문학적 기초는 배제한 채 주입식 교육만을 강조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미술을 예로 들자면 동양화와 서양화가 갈리고, 동양화만 하더라도 수묵화와 채색화로 또 나뉩니다. 이는 수많은 전공의 분리효과로 자기전공만을 우선시하는 ‘전공바보’들을 양산하고 있는 꼴이지요. 창의성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원로 예술가로서 현 교육관과 분열된 사회상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통섭이란 ‘스미고, 번지는’ 겁니다. 언젠가는 서로를 적시고 서로에게 물들며 조화를 이뤄내는 백년대계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최초 순교미술관 작품봉헌미사 후 대전 유흥식 주교님과 포옹박수

한편, 몇 해 전 가톨릭으로 귀의한 이후 그는 다시 한 번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에 큰 물결을 남겼다. 2017년 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한 충남 신리성지 순교자 미술관 벽화 작업을 맡은 것이다.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메트로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 손자선 토마스 영정성화 5점 및 1000호 크기의 순교성화 13점 봉헌은 한국의 천주교역사수호 화가라는 새롭고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백년대계를 위한 이종상 화백의 걸음 걸음에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Profile

1963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8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수상
2003 『은관문화훈장』 서훈 (대통령 ‘03),
2005 『제1회 안견문화대상』 수상(안견기념사업회 ‘05)
2008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수상(한국언론인 협회 ‘08)
2010 『국가유공자 건국포장』증서수증 제11-22879호 (대통령 ‘10)
2011 『제1회 가장 문학적인 화가상』수상 (사)문학의집, 서울
2015 『제1회대한민국나라사랑 실천대상』수상(도전한국인본부)

개인전
1977 동산방 초대 최초의 독도 화가『이종상 진경전』
1990 프랑스 그랑빠레 최초 꼬레-부츠 개인전 『이종상 근작전』
1995 백남준 기획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초대전-『The Tiger's Tail』
1998 프랑스 문부성 TFAA" 초대『루브르미술관 까르젤 설치벽화』
2007 대전시립미술관 초대『한국현대미술의 거장-이종상』
2102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초대『현대한국대가-일랑 이종상 명품전』

단체전
1997 『세계 80人화가』 선정전 Enrico Navarra, 파리
2003 『제1~2회 북경비엔날레』 초대작가 북경박물관
2006 『광주비엔날레 '열풍변주곡'』특별초대 작가전, 광주시립미술관
2011 『한국현대미술전』(회화3인: 김환기,이우환,이종상) 메트로포리탄
2011 『UN남북동시가입 20주년남북평화미술전』초대출품 및
조직위원장
2012 『제1회 몽유도원전』초대전Zaha Museum (사)안견기념사업회
2014 『60년의발자취』대한민국예술원, 국립현대미술관주최, 덕수궁
2017 『이종상과 랑우회-동음과 이음』사제3대전, 흰물결갤러리

경력
서울대학교미술대학교수 / 서울대학교 박물관장 서울대학교미술관 초대 미술관장 
삼성문화재단 이사 / 한국조폐공사 자문위원 /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초대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장 및 건축위원장 /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회장 
문화체육관광부 동상영정심의위원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 이사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장 
일민문화재단 이사 / 고촌재단 이사 / 4.19혁명유공자회 회원 / 지문밖문화포럼 명예이사장  한국벽화연구소 소장 / 1호 보성명예군민 / (사)안평·안견현창사업회 고문 
대한민국해군 광개토대왕함 명예함장 / 고구려문화지키기운동본부장

대벽화
대법원 로비 / 서울지방법원 로비 / 검찰청 2로비 / 삼성본관 로비 / 연세대 세브란스 빌딩로비 / 수원성당 제대 / 태백산맥문학관 외벽 

성미술
서울 혜화동성당 / 경기 평택성당 / 전남 광주신학대학교 본당 / 한국최초 대전교구 신리순교미술관 순교기록화 봉헌 등 다수

 

▲ 2019년 대한민국예술원 아랍에미리트전 개막식장 퍼포먼스 (독도일충) 속사

박예솔 기자 yesall429@naver.com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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