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모습들
마스크는 이제 필수품이 됐다. 재작년 겨울을 거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렇다. 백신 접종을 선도적으로 실시한 나라 몇은 이쯤 해서 ‘마스크를 벗게 될 것이라는 뉴스를 타전하고 있지만 말이다. 1년 넘게 전국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낯설기만 한 모습은 아니지만, ’코로나‘ 시국을 타고 전개되는 상황은 아무튼 복잡다난하다.
타인의 모습이야말로 나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 거리나 모임 장소에서 얼굴을 반이나 가린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현실과 받아들이는 마음 사이에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 기름과 물처럼 서로 겉돌면서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선에서 갈피를 못 잡는 심리, 그런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피아 간에 마스크를 쓴 모습에 좀 더 익숙해져야겠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거리감을 허물어야겠다.
코로나19 심리
암 같은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흔히 네 단계의 심리상태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엔 "내가 이런 병에 걸렸을 리 없어" 부정하다가, "아니 하필이면 왜 나야?" 하는 식의 분노 표출의 단계에, “병원에 다니며 치료 잘하면 괜찮아질 거야”와 같은 현실과 타협하는 상태다. 이어 건강할 때보다는 못하지만 "난 반드시 이겨내고야 말겠다"라는 자구책 차원의 수용 태세를 보인다. 코로나19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 모르면 무지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이웃이긴 하지만 중국에서 발병한 것이라고 하니 처음엔 "너 해라. 나 듣는다."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서 위험이 강조되자 "별게 다 속을 썩이는구나" 하는 남 탓 심리로 가득했었다. 그러다가 이내 “보라고, 우리나라는 방역이 잘되고 있다잖아.”라며 참고 견디려 애를 썼다. 하지만 ’코로나19‘도 이제 햇수로 3년째다. 봄이 오면 '집콕'을 벗어나 봄나들이를 할 수 있겠지, 움츠리던 몸을 활짝 펼 수 있겠지 하는 염원으로 가득했었다. 그게 어디 어느 특정인만의 바람이던가? 아니, 모두의 바람이다.
지금은 백신이 문제!
백신이 문제다. 백신 접종이 빠른 나라들에 비해서 상대적인 박탈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잘 쓰고,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 잘 씻기' 이런 거 열심히 하다 보면 그 터널에서 이내 빠져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백신이 열쇠다. 화이자나 모더나 얀센 같은 제약회사에서는 발 빠르게 백신을 생산하고 미국, 영국, 이스라엘, 캐나다 등 백신 수급에서 접종까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만 해도 부지기수다.
이제 곧 독일의 '큐어백'에서도 백신이 출시된다고 한다. 백신은 의과학이고 생명공학이다. 백신 접종이 더디면 그만큼 활기찬 사회는 요원해진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좀 더 심기일전하며, 셀프 위로를 건넨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