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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뛰어넘은 예술혼(魂), 금속조각은 생명력(生命力)을 불어넣는 일

기사승인 2021.07.22  16: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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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성(吾成) 조문기 문지공방 조각장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제35호 금속공예 조각장인 김철주 선생은 예술로 진행하는 금속조각은 수천번의 두드림과 깎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技)만 알고 예(藝)를 알지 못하면 조각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금속 예술의 경지에서 갖는 마음가짐을 간접적으로 전한 것이다.  대중이 알아주지 않지만 끊임없이 이어진 한국금속공예의 맥을 잇고자 차가운 금속조각에 따뜻한 혼을 불어넣고 있는 조문기 조각장을 마주했다. 지역(김해)의 조그만 공방에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공방손님을 맞이하는 따뜻한 그의 눈에서 가슴속 뜨거운 열정이 비쳤다.


금(金)세공에서 시작한 작업
조문기 조각장의 하루는 24시간이 부족하다. 금속과의 인연은 오래 전이었다. 1989년, 부산 조방 앞 순금공장에서 금세공 일을 접하면서 전문적으로 금속조각이라는 분야에 심취했다. 그리고 10년 뒤 타인에게 불행으로 닥쳤던 IMF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다. 장기간 근무한 회사를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서울생활을 준비했다. 

"1990년 입사한 범한골드 세공부 소속 조각팀에서 세공을 하면서 조각일을 배웠습니다. 전체직원은 80명이 넘는 큰 회사였어요. 세공부에서만 20명 이상이 근무하며 운 좋게도 거기서 안희봉 선생님을 만났고 순금 장신구에 한 땀 한 땀 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IMF 이후 직원은 현저히 줄었고, 2년 정도 버티다 미래비전을 생각하면서 사표를 냈습니다."

조 조각장은 퇴직 후 먼저 버킷리스트를 정했다.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처음한 일은 중국 배낭여행이었다. 광저우에서 시작해 (계림-운강석굴-황산-장사-태산-북경-만리장성-연길)백두산을 거쳐 칭따오로 나오는 한 달 여정이었다. 

"백두산 천지는 물론 눈 앞에 펼쳐진 방대한 대륙 구석구석은 모두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왜 태어나 존재하는지, 무엇을 하며 앞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뭐를 할까?’ 한국적인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알릴 수 있는 전통금속조각을 깊이감 있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죠."

중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꿈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2000년 초, 조선 임금들의 영혼이 묻힌 선정릉 인근의 서울 국가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을 찾아갔다. 
김철주 조각장이 금, 은, 동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으로 만든 작품세계, 그것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였다. 금속표면에 쇠망치와 소도리를 사용해서 조각하는 전통기법을 기초부터 하나씩 배웠다. 그러면서 불교 조형물에 섬세함으로 하나씩 입히는 작업에 매료되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기에 하루 일을 시작하면 해 질 때까지 몰두했다. 스스로 잡념을 떨쳐가며 일하기에 세월의 흐름은 찰나로 느껴졌다. 

"김철주 선생님은 4~5명의 제자와 함께 가르치며 작업을 하셨습니다. 먼저 과제를 받아 작품이 완성되면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조언을 듣는 식이었죠. 한 번은 시골에서 전화를 드렸는데 연락이 안 닿더라고요. 후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작업 중 사고로 김철주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으신 상태였습니다."

 

▲ 은상감 쌍용도

 

맥과 전통을 잇고자
스승과의 인연이 다시 닿은 2010년, 경력 15년 이상의 금속공예자 중 선발되어 복원과정 연수를 했다. 문화재청 소속 전통문화대학교의 연수원에서 서울대 미대 서도식 교수의 지도로 금속문화재 복원과정을 장도장-박종군님, 낙죽장도장-한상봉님, 유기장-이형근님, 금박장-김기호님, 연죽장-황기조님, 입사장-승경란님과 함께 공부하였고, 동경 해외연수에서 일본의 작품과 현장의 작업과정까지 알게 된 값진 기회를 얻었다. 지금까지도 매년 세미나에 참여 하고 무형문화재 이수자회 등의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소중한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또한, 부산과학대의 은사이신 조현수 교수의 권유로 2014년 일본 가나자와 석천 국제갤러리의 초대 금속공예전을 열기도 했다. 

 

자신과의 싸움, 조각
조각장이 하는 작업은 밑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그려진 금속면에 조각정을 망치로 두드려서 홈을 파고, 금과 은으로 가는 선을 만들어서 파인 홈을 하나의 선으로 박아넣어 만드는 조각, 상감기법으로 하는 작업이다. 이때 사용하는 망치를 소도리라고 부르고 조각정은 사용하는 홈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서 다질정, 움풍정, 촛정, 털정, 옆댕이정 등이 있고, 작은 망치를 이용해 두드려 문양을 새겨 넣는다. 

"맥과 전통을 잇는 의미에서 하는 작업이라 많은 시간 소요됩니다. 작업은 다양하지만 집중해 금속을 쪼아 만드는 일에는 6개월의 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합니다."

김철주 선생과의 인연은 2015년 3월에 작고하시기 전까지 매달에 한 번씩 찾아뵙고, 작업하는 과정을 여쭙고, 전통을 잇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들었다.

조선왕조 존재한 관청수공업에서는 술을 담는 주전자로부터 담배함, 신선로, 화병, 정병, 불기의 큰 제품을 만드는 대형공방과 비녀, 가락지, 방울, 노리개나 패물과 수저를 만드는 세공방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시장권이 지방에도 넓어지면서 보부상이나 점촌을 통해 자기자본화된 여러 유기(놋그릇)과 솥 등이 팔리면서 함께 금속조각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문화는 대부분 빼앗겼죠. 침략국은 조선이 전통적으로 가졌던 기술, 불교문화와 관련한 기술에 관심이 컸고 본토로 예술인을 빼돌려 기술을 모두 약탈했습니다. 만일, 우리 선조의 문화가 그대로 남았더라면 K-POP이나 한류라는 타이틀이 없이 유럽의 문화재를 뛰어넘어 문화강국으로 인정받았겠죠."

2018년, 조 조각장은 갤러리가야에서 '천년의숨결 천년의소리' 개인전을 통해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은 흑색동판에 은선을 넣어 콘트라스트가 강하고 미려한 표현으로 고려의 불화를 재해석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속조각 인생 30년 중 최근 10년 간 고려불화와 매화를 밑그림으로 작업 중인 조 조각장은 소박한 꿈을 전했다. 

그는 "언젠가 고향으로 내려가 자연친화적인 금속조각을 작업하고 금속조각 체험관을 만들어 학생에게 전통적 조각방식을 교육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 은상감 수월관음도

<He is...>
경남 함안 출신이다.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10살 때 뇌막염으로 생사를 오갔다. 이후 한 걸음도 떼기 힘들었지만, 10리길을 등하교했다. 왕복 8킬로를 매일 오가는 어린아이의 손은 성한 날이 없었다. 어설픈 걸음에 넘어져 손 군데군데 피딱지는 낫기 전에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6학년 때 겨우 자전거를 배워 타고 다니면서 피딱지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됐다. 장애는 스스로가 만든다고 생각한 조 조각장은 동네친구들과 허물없었다. 손기술에 맞는 기계공고 진학을 꿈꿨으나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마산상고로 진학한 뒤 동생과 함께 자취생활을 이어나갔다. 졸업 후 추천으로 입사한 회사는 적성이 맞지 않았다. 얼마 뒤 부산에 세공학원의 정보를 듣고 <고려부속세공학원>을 다니며 금속조각에 관심을 가졌고, 금세공 공장에서의 경험을 거쳐 중요무형문화재 조각장인 김철주 선생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10여 년 전 김해에서 문지공방을 열고 매일 불화와 매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Profile
안희봉 선생 사사
부산미협 정회원
한국전통문화진흥협회 정회원
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새하얀 미술대전 초대작가
김해미술대전 초대작가
전주전통공예대전 초대작가
성산미술대전 초대작가
2011년 대한민국공예대전 지식경제부 장관상 수상
2008년 대한민국전승대전 장려상 수상

중요무형문화재 35호 조각장 김철주 선생 이수자

통도사 불화초본집 동판조각으로 재해석

서성원 기자 tmaxxx@naver.com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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