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돌, 자연을 통해 인생의 마지막 돛을 올린 '항해'

김성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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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칼릴 지브란은 말했다. '집은 닻이 아니라 돛'이라고. 칼릴은 집이 휴식 하고 쉬는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항해를 준비하는 곳이라 했다. 인생이란 망망대해로 떠나는 항해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꿈으로 다가서진 못한다. 때로는 거센 폭풍우를 만나고, 때로는 암초 사이에 갇혀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다시 태양이 떠오르며 맑아진 날에 해풍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하면 또다시 돛을 올리며 항해를 준비한다. 여기 자신의 꿈을 담아 인생 후반기 항해를 하는 작가가 있어 동행했다.

인생이라는 '항해'를 그리며
조각가 김성호 작가의 개인전은 빨랐다. 1992년, 동기보다 빠르게 부산 용두산 인근 누보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1번의 개인전을 이어왔다. 
"사진도 전문가를 섭외해 슬라이드로 멋지게 찍었죠. 인쇄물에도 작품은 마음에 들게 나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남들 차 살 돈으로 개인전을 열어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으로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초기 가족이나 인물에서 서서히 변화해 15년 전부터 '항해'를 오브제로 선회했다. 
영도태생 김성호 작가. 필연처럼 흘러와 심리적인 조합으로 이뤄진 작품에는 그의 잠재의식과 몽환적인 꿈이 내재되어 있다. 바닥에 이리저리 떨어진 목파편과 넓게 진열한 수십점의 작품이 타성으로부터 떨어져 갖는 작품의 상징적 가치를 대변했다. 

재료는 오래된 사찰이나 목조건물의 원주, 각주, 대들보 등 다양하게 사용한다. 가끔 자연에서 찾은 세월의 흔적을 담은 멋진 돌을 목조각과 함께 두기도 한다. 이런 오브제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이어진 입체적인 작품은 전경과 후경의 거리감이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오롯이 김성호 조각가의 재해석으로 만들어진 작품세계이며,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는 작업이다.

"저 '섬'이라는 시리즈 작품은 바닷가에 떠내려온 폐선목을 갈고 파내며 자연스럽게 만든 작품입니다.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항해의 모습이 마치 인생 같거든요. 배나 등대를 만들다가 이제는 입체적으로 바로 벽에 걸 수 있는 부담없는 크기의 작업을 주로 합니다. 작품을 시작 전 오랜 시간 동안 이리저리 매치를 해 보면서 자연스럽고 친숙한 위치를 찾다가 딱 제 마음에 드는 위치가 나오면 작업을 시작합니다."

눕히고 세우고, 그리고 멀리서 보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변화를 시키다가 마음에 들면 조금씩 깎아나가는 기나긴 작업이다. 시간을 두고 생각이 필요하기에 뚝딱 만들수 있는 작품은 없다.

예술의 열정으로 환경 극복
김성호 작가는 영도 신선동 산복도로 출신이다. 경사 심한 동네에 6번, 9번, 56번, 82번 버스를 타고 오갔던 추억을 안고 있다. 묘박지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큰 배를 바라보며 푸른 바다와 같은 꿈을 안고 자랐다. 
4분의 누님이 있었고, 어릴 적에는 모두 알아서 조용하게 책상에 붙어 각자 공부하며 가내 분위기였다. 경남여고를 거쳐 부산교대를 다녔던 큰누님은 교통비가 부족하면 영도에서 연산동까지 편도 4시간 거리를 걸어  통학하는 정신력으로 동생의 모범이 됐다. 생활력 강한 어머니의 노력으로 6남매는 모두 무탈하게 대학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1980년 초, 대학진학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6남매의 대학진학은 이웃의 화제였다. 김성호 작가 역시 모범생으로 전액장학금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다. 

중학교 때부터 항상 미술에 소질 보였던 김 작가는 고1 시절 미술부에 들어가며 인생이 바꼈다고 한다.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을 목표로 공부해 왔기에 늦은 시작에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대입을 준비하기 위해 입시미술학원이 필요했는데 겨우 대청동 미술학원을 찾았습니다. 학원비가 없어 아르바이트로 대신하곤 했죠."
대학 성적이 우수해 졸업 후 바로 상경이 가능했다. 초임지는 서울 도봉구 북서울중학교였다. 교사생활하며 투잡처럼 짬내어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정리시간이 오래 걸리는 흙작업을 계속하긴 힘들어 조각으로 바꿨다.

 

짬짬이 목조각 작업을 하면서 개인전을 이어갔다. 그렇게 31년간 교편을 잡으며 이룬 개인전만 7번이었다. 중간에 코르크 작업으로 2, 3회 개인전을 열었고 단순화된 네모난 인물과 가족, 이후 항해로 큰 주제를 변화해 왔다. 인터뷰 중 김성호 작가는 어려운 시절 도록준비를 하며 기꺼이 도와준 선배 <강선호 미술평론가>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김성호 작가는 앞으로 작품을 본질만 남기고 밀도가 높아진 작품에 집중할 예정이다. 장안읍 덕선리에 1층은 작업장, 2층은 갤러리 전시장 및 작업작으로 내년 3월에 개장을 앞두고 있다.
김 작가는 "미대를 졸업하면 그중 10% 정도만 10년 20년 후에도 작업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실적인 전업미술가는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라도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은 높아지고 손은 오히려 느려집니다. 당연히 스스로 작업이 마음에 안 들겠죠. 친구에게 남은 재료 떠넘기는 일만 없더라도 괜찮은 것일 겁니다"라며  후학에게 '지속적 작업의 중요성'을 조언으로 남겼다.

"입체는 제 전부입니다"라고 전하는 그의 손에서 진한 나무의 향이 10년, 20년 후에도 계속 묻어나 대중에게 아름다운 항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Profile
부산대학교 사범대학교 미술교육학과
개인전 및 초대전 11회
아트나살전 (2021)
화이트갤러리 12지간 기획전 (2021~2019)
부산조각제(부산문화회관, 금정문화회관, 홍티아트 등) (2020~2004)
해운대 작가전 (2020~2003)
금빛사상미술협회 기획적(523갤러리) (2019)
한국, 미얀마 국제교류전 (미얀마 양곤) (2019)
한국조각협회 부산지부회전(이듬갤러리 등) (2019~2017)

제1회 부산미술인상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 부산시 장식미술품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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