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철 칼럼] 촌지와 선물, 무엇이 문제인가

  • 입력 2022.04.18 19:28
  • 수정 2022.04.18 20:20
  • 기자명 하영철 미래교육포럼 상임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어사전에 나온 촌지의 뜻은 "자그마한 뜻을 나타낸 적은 선물"이다. 촌지는 공직 사회뿐만 아니라 사조직에서도 부패의 상징으로 치부된다. '국민의 정부' 때 교직 사회의 촌지 부도덕성이 크게 이슈화되었다. 그 당시의 모 교육부장관은 교원을 학부모로부터 촌지만 받는 아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그때부터 교직 사회는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전락했으며, 교권은 사정없이 실추되었다. 촌지뿐만 아니라 나이든 교원을 무능한 교원으로 취급하며 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교원의 정년을 단축시켰다. 그 이후 교육은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황폐화되었다.
  
6.25 이후 우리 국민은 정말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교권은 살아 있었으며, 학부모나 학생은 교사를 존경했다. 그때의 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실력 있고 청렴결백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교사들은 지금의 교사들보다는 교직을 성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그 시절에도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에게 선물하는 일은 있었다. 소풍 갈 때 담배 한 갑, 명절 때 약간의 과일이나 설탕이 담긴 조그마한 선물 바구니, 계란 한 줄 등. 물론 이런 선물을 할 수 있는 학생은 가정 형편이 좀 나은 편으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에 학교 관사에 살고 계시는 선생님과 일요일이면 같이 나무를 하러 갔고 해가 질 무렵 나무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돌아와 사모님이 차려주는 저녁 한 끼로 배고픔을 달랬었다. 총각 선생님의 하숙방에 나무를 가져가서 불을 때 드리기도 했고, 동짓날 밤에는 팥죽을 한 냄비 들고 가서 선생님댁 마루에 놓고 달려 나오기도 했었다. 조그마한 선물에도 고마워하고 어려운 학생을 도와주셨던 그때의 교사들은 현재의 교사들보다 실력은 부족했을지 모르나 학부모나 학생들의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었다.
  
농촌에서는 가정 방문을 가면 학부모가 날계란 한 개를 그 자리에서 꼭 들고 가라며 깨뜨려서까지 주었고, 고구마 몇 개를 싸주는 학부모, 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와서 가방에 억지로 넣어주는 학부모의 마음은 교사들을 감동시켰다. 또 교사들은 학생을 사랑으로 보살폈으며, 학부모와 교사 사이는 인간의 정으로 맺어져 있었다. 그 시절엔 보충 수업이나 자율 학습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과나 학급 담임이 알아서 스스로 했다. 물론 그에 대한 수당은 전혀 없었고 생각지도 않았었다.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교실에 남아 영어와 수학을 지도하는 교사가 대부분이었고, 이렇게 하여 학생의 성적이 오르면 교직에 대한 보람을 느꼈던 것이다.
  
사회가 변하고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간의 이 같은 아름다운 관계는 점점 소원해져 서로 간에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로 변해버렸다. 만일 요즈음 학생이 교사의 자동차를 세차한다면(물론 이런 일은 찾아볼 수 없으나)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한 학생을 불러, "○○야, 지금 밖에 가서 ○○○을 좀 사올래?" 하면 "예, 그러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학생보다는 "저 할 일이 있는데요" 하면서 교사의 부탁을 거절하는 학생이 더 많은 현실이다.

  
학년 초가 되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내 자식 좀 잘 봐 달라'는 대가성 촌지가 오고 갔던 과거의 학교 사회의 실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과거에 부유한 학부모는 교사에게 식사 대접도 하고 선물이나 촌지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성적이 크게 올랐거나 학생회 회장이나 학급 실장 등을 맡았을 때 학부모로서 자랑스러운 마음에서 교사들을 대접한 것이었다. 내 자식 잘 봐 달라는 뜻이 아닌 학생들 지도에 고생하시는 교사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형편이 넉넉한 학부모가 교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담임교사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하는 것은 인정미 넘치는 훈훈한 일이 아닐까. 문제는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접대를 강요한다든지 선물을 준 학부모의 자녀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정규 고사에서 1등을 했다 해서, 학급 실장이나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해서 한턱을 내라고 강요하는 교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감, 교장 시절에 학부모의 접대에 쉽게 응하지 않았었다. 교사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학부모가 스스로 결정한 일인지를 알아보고 또한 학부모가 직접 전화를 한다든지 찾아와 사정할 때만 응했었다.
  
교사와 학부모 간에 오고 가는 부도덕한 촌지와 촌지의 대가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선물을 하는 것은 주고받는 사람 모두에게 흐뭇한 일이다. 잘 사는 학부모가 학년 말에 내 자식 잘 지도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건네는 선물이나 접대는 피곤에 지친 교사들에게 보람과 용기를 주고 힘이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일까지도 부도덕한 것이라고 매도한다면 인간 사회의 정리(情理)는 끊어지고 말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부모와 교사, 학생과 교사 간에 서로 주고받는 고마운 마음이다. 학생을 특별히 잘 지도해 주겠으니 촌지를 달라고 하는 교사는 없다. 만약 그런 교사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교직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학부모가 대가성 없이 교사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주는 선물을 받는 것까지 도덕의 잣대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교사들을 촌지만 받는 집단으로 매도해선 안 된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서도 안 된다. 교사도 사회나 학부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성직관에 입각해서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매스컴도 교사의 교권을 바로 세우는 데 힘써 교원이 학부모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학교 풍토가 조성되도록 앞장서 줬으면 한다.

 

Profile
現  미래교육포럼 상임대표
    미래로학교교육도우미 대표
    호남교육신문 논설위원
    대한민국 사진대전 초대작가
 
前  광주광역시 학생교육원 원장
    광주 KBS 남도투데이 교육패널
 
저서 <가정교육의 함정-오래>(2013):아동청소년분야 최우수상 수상(문화체육관광부)
      <생각을 바꾸면 학교가 보인다-영운출판> (2011),
      <학습력 증진을 위한 수업의 실제-형설출판사> (2010년)
      <아는 만큼 교육이 보인다.>-V.S.G Book (2009) 등 30여권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