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러-우크라 전쟁을 끝낼 '중재자' 될까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

  • 입력 2022.04.29 11:15
  • 수정 2022.04.29 23:46
  • 기자명 박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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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등 그 피해가 막대하다. 이에 국제연합 유엔(UN)이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각각 방문해 양국 대통령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사무총장의 주요 권한은 국제 분쟁 예방을 위한 조정과 중재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이번 사태의 중재자가 될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러-우크라 만나기 위해 움직인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 4월 26일 중재국인 터키 앙카라를 거쳐 모스크바에 방문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크렘린 궁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논의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의 행위가 국제법과 인권법 위반이라는 점을 푸틴 대통령에게 언급하며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민간인과 우크라이나군이 여전히 갇혀 있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인도주의적 통로를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도 덧붙였다.

구테흐스 총장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민간인 대피에 동의했으며, 현재 유엔 관리와 러시아 국방부 간 대피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갈등을 완화하는 데 유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꼽았지만 동시에 “회담이 전쟁을 끝내지 못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종전을 결정하고 정치적 합의가 마련된 뒤에 전쟁이 끝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먼저 만나고 이틀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는 일정에 대해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를 먼저 찾는 구테흐스 총장을 겨냥해 “정의도 논리도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고 모스크바 거리에는 시신도 없다. 우크라이나로 먼저 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침공이 초래한 결과가 어떤지 보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난민의 아버지, "약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어깨가 무겁다. 그는 2005년부터 10년 동안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를 지내면서 서방 부국들에 난민을 받아들이고 국경을 열 것을 요구하는 등 난민 대책에 적극 나서 ‘난민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앞서 사무총장에 출마하면서 안보리에 낸 성명에서도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유엔의 깃발을 보고 자신들이 보호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면서 ‘약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유엔 평화구축위원회에 회의에서 “현재 인류의 4분의 1인 20억명이 분쟁 속에 살고 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폭력과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 예멘, 시리아, 미얀마, 수단, 아이티,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부 등의 분쟁을 언급한 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질서의 토대를 흔들고 국경을 막론하고 식량, 연료, 비룟값 폭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유엔이 올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야 할 인구를 최소 2억 7400만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2021년보다 17% 증가한 수치다. 유엔 인도주의 사무국은 당시 구호 대상자 1억 8300만명을 지원하기 위해 410억 달러(약 49조 6141억원)가 소요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 2017년 1월 반기문 전 총장의 후임으로 제9대 UN 사무총장에 올랐다. 5년 간의 임기를 마친 그는 2021년 열린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연임 추천을 결정에 연임에 성공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가 후보를 추천하고 총회가 이를 추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구테헤스 총장은 리스본 태생으로, 대학에서 물리학과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시절 빈민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의 진로가 바뀌었다. 그는 빈곤가정 아이들을 위한 여름학교 교사를 했고, 홍수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도왔다. 그는 자원봉사만으로 가난과 고통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 끝에 1974년 사회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이 됐다. 1995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하면서 총리가 됐고 연임을 한 뒤 2002년 사임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160여개 사회·노동계 정당 협의체인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의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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