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을 통해 대한민국 자생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다

일랑 이종상 화백

  • 입력 2022.09.07 13:29
  • 수정 2022.09.07 14:04
  • 기자명 박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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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대미술사에 큰 물결을 일으킨 일랑 이종상 화백은 예술을 통해 전 세계에 우리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온 인물이다. 이종상 화백은 고구려 문화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에게 새겨진 문화적 DNA 즉, 우리 문화의 자생성을 연구하고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전해온 바, ‘통섭’으로 하여금 자생문화의 뿌리를 견고히 다져나가고 있다. 

자생성, 우리 것의 우수함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
이종상 화백은 외국의 것을 맘껏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의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우리 문화의 자생성을 상실한 채 문화속국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갑자기 생겨난 혼혈족이 아닌 원시시대부터 유구한 역사를 간직해 온 한민족입니다. 제가 선사문화부터 시작해 고구려 벽화,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연구를 통해 자료를 살펴보고 조사해본 결과 우리 한민족이 지닌 문화적 자생성은 엄청난 면역성을 지녔습니다. 그 면역성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도 이름을 알리고, 외국의 문물이 국내에 들어와도 현지화 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유목문화와 수렵문화, 그리고 농경문화와 해양문화의 유전자까지 소화해내며 이미 다문화적 자생성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기에 오늘의 한류가 세계를 놀라게 하는 겁니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수한 색의 표현
이와 관련, 이종상 화백은 우리 고유의 색채를 주제로 논문을 작성한 바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까망 등 유채색과 무채색을 합해 오방색이라는 다섯 가지의 원색 이름을 만들어 시·공간의 종합적 개념을 사용했다. 1666년에 아이작 뉴톤의 프리즘에 의한 스팩트럼 이론과 먼셀이 주장한 색채론과 놀랍도록 부합한다. 
이처럼 선조들은 서구의 과학적 분석 이상으로 자연의 색채 원리를 이미 선험적으로 직관에 의해 터득하고 유채 삼원색과 무채 이원색의 오정색 등을 분류했다. 그 외에 색들엔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도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모든 색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우리말 색채표현은 어미변화 하나만으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삼원색의 색이름 끝자 받침에 ‘ㅇ’을 쓰면 명사가 되고 ‘ㄴ’을 쓰면 형용사가 되며 어미에 ‘ㅎ+게’를 쓰면 부사가 되는 어문적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색상 이외의 색질을 표현할 수 있는 채도(彩度), 명도(明度)는 물론, 건습(乾濕), 중량(重量), 질감(質感), 선도(鮮度)까지도 자유자재로 색채의 감정표현이 가능한 가변적인 색 이름을 일상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빨강이어도 ‘새빨강’ 하면 금방 칠한 느낌이고, ‘시뻘건’라면 색에 무게감이 생기지요. 오로지 우리말에서만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색 표현들입니다.”

 

 

“스미고 번지는 우리의 채색화처럼”
이와 관련, 색채에 대한 표현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우수한데도 한국의 동양화 중 채색화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방 이후 그림의 색을 입히는 채색은 일본의 것이라는 인식이 깊게 뿌리 내리면서 수묵화가 조명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종상 화백은 일본의 채색화와 한국의 채색화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스미고 번지는 채색이라면, 일본은 서양 유화 기법을 흡수한 채색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장지화 기법은 겹의 미학에서 옵니다. 동양화를 보면 앞과 뒤가 같습니다. 표구하기 전에 살펴보면 앞면과 뒷면이 같습니다. 스미고 번지는 종이 위에다가 수없이 겹겹이 쌓았기 때문이지요. 수묵화도 그렇습니다. 앞뒤가 똑같아서 표구사에서 실수로 앞뒤를 잘못 뒤집어서 배접을 해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 그림의 특징입니다. 이게 미대에서도 안 가르치고 점점 사라지는 채색화 기법이에요. 근데 일본인들한테 배운 일본 채색 기법, 서양 문화를 배우고 와서 우리나라 동양화 채색을 가르치는 겁니다. 나도 그렇게 배웠어요. 서양화는 흰 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뒷면이 그냥 천입니다. 그리고 화려한 그림을 앞에 그려넣지요. 서양화 기법은 가까이서 보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채색화 기법은 고구려 벽화, 고려 불화, 조선의 궁중화에 내려오는 그 기법이 장지화 기법입니다. 그래서 종이 지(紙)자에 장할 장(壯)자를 쓰는 거예요.”

 

 

고구려 벽화 연구 통해 우리의 재료기법을 파헤치다
이종상 화백은 우리 문화의 자생성을 이어가기 위해선 ‘재료기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 화백은 고구려 벽화 연구를 통해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기법에 대해 이를 바탕으로 실로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이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재료기법’ 강의를 신설하여 예술가로서 반드시 익혀야할 기본기로 삼고 후학들에게 전하며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 물을 맞아도 전혀 훼손되지 않는 과학기법이 담긴 것이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 벽화입니다. 재료와 기법을 아는 것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찍이 깨달은 바, 동료 교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최초로 ‘재료기법’ 강의를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살리려면 기초가 다양하고 깊어야 합니다. 동양화 중에 집을 건축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을 ‘옥목화’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집과 집, 동네를 그리고 궁궐과 성곽을 그리고 도읍지를 그린 그림을 ‘계화’라고 하지요. 요즘 말로는 설계도 내지는 도시계획도가 되겠군요. 현 시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화목들이 동양화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액자의 노예가 아닌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건축을 배우고, 천문학을 배우고, 시공개념을 확장해나가야 합니다. 그게 다 과학이고 수학이고 인문학인 것이지요.”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 ‘통섭’에서 시작된다
이종상 화백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통섭’으로 갈무리 된다. 통섭이란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이 화백은 하나의 전공에 매몰돼 주입식 교육으로 점철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나 창의성이 생명인 예술가일수록 통섭을 통해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식견을 넓혀가야만 한다.

“학문이란 피라미드와 같습니다. 제각각으로 생긴 돌멩이들을 일렬로 쌓아올리면 금방 무너지고 말아요. 그러나 학문이라는 돌을 넓고 촘촘하게 쌓아 올리다보면 튼튼한 구조물이 만들어지지요. 그 꼭대기에 ‘전공’이라는 하나의 돌을 올림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통섭입니다. 넓을수록, 또 많을수록 견고해지는 것이 배움이지요. 남들보다 먼저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통섭이 되지 못해 금방 무너지고 맙니다. 지금의 교육체계는 소위 말하는 ‘전공바보’를 양산해내는 교육입니다. 4차산업이 고도화될수록 더 그래요.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멀리 내다보며 자생성부터 통섭에 이르는 돌을 하나씩 쌓아가며 튼튼하고 오래 보존되는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이는 비단 예술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문화 발전에 관심을 갖고 통섭의 시대를 열어나가길 바라봅니다.” 

 

Profile
학력

1963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8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경력
서울대학교미술대학교수 / 서울대학교 박물관장 서울대학교미술관 초대 미술관장 
삼성문화재단 이사 / 한국조폐공사 자문위원 /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초대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장 및 건축위원장 /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회장 
문화체육관광부 동상영정심의위원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협의회 이사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장 
일민문화재단 이사 / 고촌재단 이사 / 4.19혁명유공자회 회원 / 지문밖문화포럼 명예이사장  한국벽화연구소 소장 / 1호 보성명예군민 / (사)안평·안견현창사업회 고문 
대한민국해군 광개토대왕함 명예함장 / 고구려문화지키기운동본부장

수상
2003 『은관문화훈장』 서훈 (대통령 ‘03),
2005 『제1회 안견문화대상』 수상(안견기념사업회 ‘05)
2008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수상(한국언론인 협회 ‘08)
2010 『국가유공자 건국포장』 증서수증 제11-22879호 (대통령 ‘10)
2011 『제1회 가장 문학적인 화가상』 수상 (사)문학의집, 서울
2015 『제1회대한민국나라사랑 실천대상』 수상(도전한국인본부)

개인전
1977 동산방 초대 최초의 독도 화가 『이종상 진경전』
1990 프랑스 그랑빠레 최초 꼬레-부츠 개인전  『이종상 근작전』
1995 백남준 기획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초대전-『The Tiger's Tail』
1998 프랑스 문부성 TFAA 초대 『루브르미술관 까르젤 설치벽화』
2007 대전시립미술관 초대 『한국현대미술의 거장-이종상』
2102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초대 『현대한국대가-일랑 이종상 명품전』

단체전
1997 『세계 80人화가』 선정전 Enrico Navarra, 파리
2003 『제1~2회 북경비엔날레』 초대작가 북경박물관
2006 『광주비엔날레 '열풍변주곡'』 특별초대 작가전, 광주시립미술관
2011 『한국현대미술전』 (회화3인: 김환기,이우환,이종상) 메트로포리탄
2011 『UN남북동시가입 20주년남북평화미술전』 초대출품 및 조직위원장
2012 『제1회 몽유도원전』 초대전Zaha Museum (사)안견기념사업회
2014 『60년의발자취』 대한민국예술원, 국립현대미술관주최, 덕수궁
2017 『이종상과 랑우회-동음과 이음』사제3대전, 흰물결갤러리

대벽화
대법원 로비 / 서울지방법원 로비 / 검찰청 2로비 / 삼성본관 로비 / 연세대 세브란스 빌딩로비 / 수원성당 제대 / 태백산맥문학관 외벽 

성미술
서울 혜화동성당 / 경기 평택성당 / 전남 광주신학대학교 본당 / 한국최초 대전교구 신리순교미술관 순교기록화 봉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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