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하모니

(주)나누기월드 나해리 대표

  • 입력 2022.10.24 16:46
  • 수정 2022.10.24 16:47
  • 기자명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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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밤(22.6.7), 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카네기홀에서 데뷔무대를 빛냈다. 막심 벤게로브(Maxim Vengerov)는 지휘자 마리오스(Marios Papadopoulos)가 지휘하는 옥스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흐(Bruch)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선택했다. 
현악 연주자 60명이 포함된 오케스트라는 브람스 교향곡 1번과 함께 친숙한 작품 세 곡으로 자신들의 실력을 무대에서 입증했다. 선곡은 수준 높은 뉴욕에서 다른 오케스트라와 비교가능하도록 했다는 평가다.
특히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브의 따뜻한 연주는 청중에게 선물과도 같았다. 그는 브루흐(Bruch)의 곡을 세련되게 연주하며 자신만의 색을 뽐냈다. 벤게로브 연주는 브루흐 협주곡에 친숙함이 묻어 났으며 1악장의 열정적 음계와 빠른 아르페지오(Arpeggio) 위 아치형을 이루는 긴 연주가 독특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다지오(Adagio)의 긴 라인에 맞춰 완전히 낮은 음역을 가져 왔다. 8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동시에 거장 작품을 연주하는 도전은 마치 바이올린이 생명을 갖고 유쾌하게 춤추게 만드는 것 같았다.
브람스 교향곡의 느린 오프닝은 애절한 바람처럼 솔로를 가리는 얇은 커튼처럼 보였고 두터운 오케스트라 질감으로 흐려졌지만 곧 뒤이은 알레그로(Allegro)가 대담한 바운스와 스윙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강력한 추진력 속에서 지휘자 파파도풀로스(Papadopoulos)는 무버먼트의 다양한 색상변화와 변곡점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한편, 지구 반대편에서는 또다른 연주가 빠르게 펼쳐지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악기가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의무’를 실천하는 그런 작은 연주이다. 부산의 한 예비사회적 기업의 이야기이다. 피플투데이는 한 젊은 대표가 이끌어가는 나누기월드의 ‘감명 깊은 스토리’를 듣고자 부산 해운대 청년채움공간을 찾았다.

 

내 사랑, 바이올린
사무실은 분주했다. 나누기월드의 대표와 직원은 다음날 있을 행사에 탁자 위 교육재료를 치우기 바빴다. 나해리 대표는 시원시원한 성격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고교시절 바이올린에서라면 자신 있었던 나 대표는 당연히 유명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었고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의 연습을 하는 악착같은 노력파에 부산예중・예고에서도 순위에 꼽힐 정도의 실력에다 콩쿨 성적도 늘 좋았기에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입실패로 재수, 삼수를 거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학교에서도 바이올린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나 대표는 차선책으로 지방국립대를 선택했다.
터닝포인트! 한 손에서 내려놓는 것을 익히자 빈 손에 다시 가질 것을 고르는 시간이 다가왔다. 철학적인 인생, 깨우침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경북대학교 4학년 시절 부산에서 J앙상블을 결성했다. 
“당시 바이올린 학원에서 레슨알바를 할 때였습니다. 마린시티에 있는 학원장은 저에게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레슨에 적극 학원 공간을 빌려 주셨습니다. 모집에는 다양한 분들이 오셨는데 그중 미혼모나 스토리를 안고 찾아오는 약자들이 계셨습니다. 나중에 장소가 협소해지자 미래교회의 목사님에게 부탁해 교회내 공간을 겨우 마련했습니다. 비록 주말에 2~3시간 하는 교육이지만 부산전역에서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 하나로 뭉쳤습니다. 그중 청각 장애인도 있었어요.”
약 1년 반 기간을  재능기부 식으로 바이올린 교육으로 봉사했다. 수업에 참가한 이들은 악기를 연습용으로 빌리던가 주변 친인척 집에서 구해 오는 이들도 있었다. 연습곡으로 마지막 연주회를 무사히 마치자 주변 사람의 반응이 뜨거웠다. 
나 대표는 그제서야 ‘아, 연주 말고도 내가 주변 사람을 행복하도록 할 수 있는 달란트가 있구나!’고 생각했다고 한다.

 

고교 선배와 협업
나 대표는 어떻게 나누기월드의 닻을 올렸을까?
그 결단은 빨랐다. 2020년부터 장애인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교육을 진행하며 <연주하고 교육할 장소>가 필요해졌다.
나누기월드에서는 그 무엇보다 악기교육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연주회를 이어나가고자 했다. 적절한 공간을 찾았는데 마침 지난해 5월 개소한 재송동 선하부지의 청년채움공간이 보였다. “원서에는 소외계층에게 레슨을 받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내용을 기입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사업자까지 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넣었죠.(웃음)”
나 대표 옆에서 적극 돕는 분은 바로 시각장애인 플루티스트 박형배 씨였다. 
“부산예중예고의 선배인 박 선배가 하루는 연주회에 초청하셨어요. 신라대에서 한 공연이었는데 너무 감동적이고 좋았습니다. 이런 선배의 재능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때, 예술계 내 장애인이나 미혼모 등 약자들이 대우받기 힘든 현실이 보였어요.”
회사의 공고를 보고 오보이스트 윤세호, 백인성 선생님도 뒤늦게 합류했다.
재능을 나누겠다는 현안을 고민 중인 딸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작명을 도왔다. 그리고, 재능을 나누겠다는 의미의 『나누기월드』 라는 멋진 이름을 딸에게 선물했다.

남들 빠질 때 노를 저어라!
나누기월드는 코로나시기인 2021년 겨울 시작했다. 이미 경남 쪽에서 장애인 오케스트라 창단이 있었다. 이제 2년차 기업이지만 나누기월드는 그동안 100회 연주회에 육박하며 빠른 사업성장세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예비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약자에게 꿈을 전해주는 기업’이기에 문화불모지 부산에서 나누기월드의 존재의미는 매우 크다. “어제도 서울에 다녀왔고 다음 주에는 나주 공연이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신없이 보내고 있어요.”
나대표는 점차 일정이 바빠지자 몸이 2~3개라도 모자를 지경이다. 그래서, 올 3월부터 지원사업에 포커스를 맞춰 선택하고 집중하기로 했다. 
먼저 부산 전역에서 20개 정도의 미술, 음악 수업에 강사를 배치했다. 강사는 20여 명이 활동하며 4대 보험까지 지원하는 정직원은 5명 수준이다. 매출 신장과 안정화를 거쳐 모든 직원을 정직원 시키는 것이 나 대표의 작은 목표이다. 
“제가 음악을 전공 했으니 교육대학원이나 음악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거나 학교에서 장애인식 교육을 많이 합니다. 다른 장애교육이나 특수교육과 다르게 장애인의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인식개선>이 가능하니까요. 사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평균적 지능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쪽이 오히려 특화될 수도 있는 점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겁니다.”

 

교육 1번지 공략 작전
이런 연주는 부산의 대표마천루이자 권력의 상징인 마린시티 내 한 초등학교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문화체험수업과 장애인 인식개선에 대한 장애인연주의 소문은 빠르게 퍼져 바로 옆 초등학교로 건너갔고 다시 인근 초등학교로 옮겨졌다.
이렇게 부산의 교육 1번지라 할 수 있는 해운대구의 몇 학교가 모두 하는 교육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여기저기에서 초청이 들어왔다. “이제는 다들 소문을 듣고 저희를 알고 불러 주십니다. 저희는 ‘장애인들이 직접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요.”
나누기월드의 사업은 가죽공예부터 실습이나 음악수업까지 문화예술체험 사업이 중심이다. 
“저희는 장애인이 정상인처럼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수익이 배분되도록 노력합니다. 많은 장애인에게 정상적인 수익을 나눠주지는 않는 건 오래된 사회현상이거든요. 장애인이 사회의 약자인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이런 장애인을 이용만 하고 100% 정상적인 월급을 주지 않던가 아예 안 주는 경우도 있어요. 기업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약자들이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이번에 나서면 다음에 나나 내 가족에게 피해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에요. 사회적 고정관념을 없애고 약자에게 100% 대우를 해 주는 것이 나누기월드의 작은 목표입니다.”

Dreams come true!
나해리 대표는 나누기월드를 설립할 때부터 사회적기업을 목표로 했다고 전했다. 최대한 짧게 예비사회적기업을 보내고 빠르게 사회적기업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나누기월드 장애인사업에는 사회적기업의 우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어요. 저 혼자서 자료를 모으고 장애인관련 내용들을 열심히 찾아봤죠. 대다수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에서는 결국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매일 나누기월드로 오는 문의는 늘고 있다. 심지어 멀리 서울에서 오는 협업 문의도 많다. 이미 9월 광화문에서 열릴 『청년의 날 행사』 도 진행 중이고 각종 미팅요청이 잦아 최근 지인의 도움으로 아예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인근에 사무실을 하나 구했다. 
“장애인들의 연주에 감동받아, 저희를 든든하게 지원하려는 중소•중견기업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홍길동처럼 움직여야 하는 시기라 체력이나 활동의 한계를 느끼는 중입니다.”
이에 나 대표는 많은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좋은 사회, 장애인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나누기월드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나누기월드의 성장에는 전호환 동명대 총장의 지원도 컸다. 부산의 상징, <동명목재>의 사립교육기관으로 시작했던 동명대학교에서는 Do-ing학부를 설립하고 실천적 지식인 양성, 도전하는 실행력과 소통과 협업, 창의성 주도성을 강조하며 온라인 수입이 가능한 혁신을 가져왔다.
“동명대에서 장애인교수님을 모신다고 해서 박형배 플루티스트, 윤세호 오보이스트 그리고 저까지 셋이서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동명대 교수님들의 앙상블인 Tu앙상블에서 저희와 협연으로 2회 정도 같이 음악회를 가졌고 뜨거운 반응을 만들어냈습니다.”

현재 나누기월드는 부산시 해운대구에서 진행하는 청년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활동 중이며 주말 원데이클래스로 10명 내외의 수강생을 받아 10개 정도의 클래스를 운영한다고 전했다.
『2022년 청년지원사업인 ‘해운대에서 함 놀까?’』 는 지난 5월 중에 강사지원기간을 마쳤고 만 39세 이하 해운대구 지역청년, 청년창업가로 나누기월드에서 진행한다.
톡톡튀는 청년지원사업으로 인스타그램 나누기월드 팔로우 후에 DM으로 강사 신청양식을 받는 점이 특이했다. 사실 나 대표는 이런 IT기술과는 거리가 먼 ‘아날로그파’이지만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2021~2022년을 거치며 겨우 몇 개월 사이 나 대표는 당당하게 장애인 아티스트를 고용하는 나누기월드의 주춧돌이 되었다. 문화콘텐츠가 약한 부산은 사회에서 예술로 뭔가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예술계 인사라면 누구나 아는 현실이다.
피플투데이는 ‘약자에 대한 소신’을 지키며 앞으로 약진하는 나누기월드와 나해리 대표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앞으로 3년 후, 5년 후에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뉴스에서 (주)나누기월드의 소식을 듣기를 기대해 본다.

 

Profile
卒 부산예술중학교부산예술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음악대학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 전공

美 카네기홀 국제콩쿨 입상 및 부산시 최연소 데뷔연주
日 요코하마(横浜) 국제콩쿨 입상베를린 국제콩쿨 입상
프랑스 국제콩쿨 입상

부산시 신년음악회 솔리스트
송파구립교향악단 단원 역임
부산시 해운대오케스트라 대표

現 예비사회적기업 (주)나누기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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