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들 칼럼] 좋은 품성은 좋은 제도를 만나야 소이행素易行

인공지능과 중용 Vol.16

  • 입력 2018.10.01 18:09
  • 수정 2018.10.01 18:10
  • 기자명 고리들 <인공지능과 미래인문학> 저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자君子 소기위이행素其位而行 불원호기외不願乎其外 소부귀素富貴 행호부귀行乎富貴 소빈 천素貧賤 행호빈천行乎貧賤 소이적素夷狄 행호이적行乎夷狄 소환난素患難 행호환난行乎患難  군자무입이부자득언君子無入而不自得焉 재상위불릉하在上位不陵下 재하위불원상在下位不援 上 정기이불구어인正己而不求於人 즉무원則無怨 상불원천上不怨天 하불우인下不尤人 고군자 거이이사명故君子居易以俟命 소인행험이요행小人行險以徼幸 자왈子曰 사유사호군자射有似乎 君子 실저정곡失諸正鵠 반구저기신反求諸其身

소素가 바탕, 평소, 본디라는 뜻이 있지만 화가인 필자에게는 '흴 소'가 익숙하다. 회사후 소繪事後素를 너무 많이 들어서다. 흰 종이나 캔버스가 없었던 옛 화가들은 나무판이나 누 런 천에 먼저 흰색 분칠을 하고 나서 그림을 그렸다. 그래야 자기가 원하는 색을 그대로 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素는 자기 본성을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낼 배경일 것이다.  한국화단에는 '이당 김은호' 화백의 문하생들이 결성한 ‘후소회’가 있는데 필자의 사부  일랑 이종상 선생님은 후소회의 후소後素는 먼저 인격을 갖춘 화가가 되라는 스승들의 당부 가 담겨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즉 소素에는 인격이나 품격이나 그릇의 뜻이 담겨있다는 말씀 이다. 또한 소素를 보면 자유自由와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자유소自由素라고 써보자. 스스로 생기는 바탕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소는 천명지위성의  성과 비슷하다. 타고난 대로 처한 대로 그 상황에서 솔성과 수도로 행한다는 뜻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소기위이행素其位而行에서 정작 중요한 단어는 행行에 담겨있다. 이 행 은 자기 품격과 그릇에서 나오는 소행素行이며 자기 성실을 지키고 꿈을 이루려는 행동이다 . 칼럼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나는 늘 재료비가 부족하다. 마음은 200평이 넘는 작업실에서  300호가 넘는 그림들을 여러 개 동시에 그리고 싶지만 현실은 각종 짐으로 가득한 30평 지 하 화실에서 20호 30호를 그린다. 그래도 동생에게 재료비를 받아쓰던 고호나 담배 은박지 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 화백보다 훨씬 낫다. 중요한 건 창작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칼럼의  주제를 구하면서도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주변에서 구한다. 빈천과 이적과 환난을 보 고 겪으며 자득함이 있다. 이렇게 나의 소행素行은 계속된다.

공자는 여기서 거이居易와 행험行險을 반대로 놓고 군자와 소인을 가르고 있지만 이는 지금 의 시대와 맞지 않고 당시에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소부귀와 소빈천을 대비시키고 그런대 로 소행素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환난素患難에 처해서 행호환난을 하는 것이 과 연 거이居易였을까? 아니면 행험行險이었을까! 모든 전쟁터에서는 뷰카(VUCA)에 대비하는  행험의 연속이 계속된다. VUCA는 기후가 보여주는 변덕성(Volatility), 복병이라는 불확실 성(Uncertainty), 전략의 복잡성(Complexity), 이간과 반간이 넘치는 모호성(Ambiguity)에  처해서는 행험行險이 군자의 소행素行일 것이다. 
뷰카는 1990년대 초반 미국 육군 대학원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4차 산업혁명기에  들어서서 다시 중요한 말이 되었다. 지금은 매일 인류의 운명을 바꿀 기술들이 등장하는 시 대라고 한다. 매일 증폭하는 불확실한 상황과 리스크를 과연 거이로 대비할 수 있을까? 물 론 소환난素患難에도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을 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는 인의仁義정도일 것이다. 공자는 농부를 소인으로 표현하는 실수를 했듯이 군인과  사업가의 행험行險을 무시했을 것이다. 명대 사상가 이지(李贄 임재지)는 겨우 12살에 ‘노 농노포론老農老圃論’에서 농부가 땀 흘려 거둔 곡식을 먹으면서 농부를 소인이라 폄하한  공자를 비판했다. 오늘날 행험이요행行險以徼幸을 하는 사람들은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은 인생을 걸고 행험行險을 하여 환경적 재난과 경제적 환난의 위기에 처한 인 류를 위한 희망의 요행을 찾고 있다.  

필자는 중용 14장을 재해석하면서 회사후소繪事後素와 거이행험居易行險을 짝지었다. 그림  그리는 일에서 흰 바탕은 거이居易와 같다. 몸과 마음이 든든한 바탕이 있어야 자기 본성을  밝혀 성즉명誠則明 명즉성明則誠이 가능할 것이다. 모험의 조건은 리스크를 끌어안는 일들 이 장난처럼 느껴질 안정감 있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행험行險이다. 작가와 예술가와 기업가와 기획자는 자기 붓질로 종이나 캔버스가 상하지 않 는다는 것을 믿고 힘껏 붓질을 한다. 때로는 칼로 그림을 그려서 종이를 찢고 캔버스를 도 려내도 그 행동과 결과가 예술로 인정을 받는다. 실패를 빛나는 경험으로 생각한다. 백지와  빈 캔버스 앞에서 작가와 예술가와 기업가와 기획자는 백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뛰어놀  공간이 생겼다며 신나게 춤을 추며 모험을 과감히 하여 어떤 경지를 자득自得한다. 

몇 년 전 어느 칼럼에서 읽은 얘기가 안타깝다. 한국은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상황이 실 리콘밸리처럼 실패를 경험자득으로 값지게 사주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하자 어느 외국계 투 자자가 한 말이다. “그럼 대기업 직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스타트업을 하게 하면 된다.” 이 는 거이居易 이후 행험行險이 성공한다는 매우 냉정한 판단이다. 활을 쏘거나 사격을 할 때 에는 우선 자기 마음이 거이居易하여야 정곡을 맞출 수 있다. 자기 몸과 맘이 거이居易하여 야 자기 품성이 이루어야 할 사명이 예이시지睨而視之로 보일 것이며 어떤 실수가 화살을  빗나가게 했는지 느낄 수도 있다. 소素는 좋은 품성의 바탕이라는 뜻이다. 이易는 쉽다는  뜻과 바꾼다(전환)는 뜻이 있다. 좋은 제도와 어울린다. 자신만을 바르게 하고 타인에게 구 하지 않는다는 정기이불구어인正己而不求於人은 좋은 제도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후소後 素와 거이居易없이 자기 품성을 바로 솔성 하는 정기正己는 어렵다. 결론은 소이행素易行이 다. 좋은 품성이 좋은 제도를 만나면 좋은 행동이 나온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