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상응(心手相應)의 경지를 추구하며 글씨에 혼(魂)을 담다

신경용 중산서예 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장. 화려한 프로필의 주인공은 중산서예의 신경용 원장이다. 오랜 세월 서예의 길을 걸어온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의 끝자락 하단으로 향했다. 연혁이 묻어나는 책장과 수북하게 쌓인 습작의 흔적들을 뒤로하고 신 원장을 만났다.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며 30년을 서예가로 살았다는 그는 조만간 고향인 밀양 복지회관에서 열릴 강의 계획에 대해 말하며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남은 인생 또한 서예의 길을 걸으며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신경용 원장에게 그간의 인생을 들어봤다.

서예와 함께한 35년
중산서예는 서예를 공부하는 이들이 모여 필체를 다듬는 공간이다. 주말은 물론 공휴일에도 중산서예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신경용 원장은 서예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언제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중산서예를 운영 중이다. 신 원장은 다소 저가의 회비로 서예학원을 운영하기에 큰 수익은 없지만 후학을 양성에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신경용 원장은 유년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한자를 익히고 글을 썼다. 그 후 각 서체에 두루 능함은 물론 한학에도 일가견이 있던 춘당(春唐) 류명수 선생과의 만남은 그가 서예의 길로 들어서는데 초석이 되었다. 일찍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큰 관심을 기울였던 신 원장은 부산으로 내려와 류 선생이 지어준 중산(中山)이라는 아호로 활동했다. 1984년 8월에는 학원을 개설하며 본격적으로 후학양성에 앞장섰다. 당시 서예가로 명망이 높았던 여초(如初) 김응현 서예가를 스승으로 따르며 서예의 길을 줄곧 걸었다. 35년에 이르는 세월간 한 길을 걸으며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기에 충분할 만큼 서예는 그에게 매력적인 존재였다.

손과 마음이 하나로
서예는 크게 전서, 예서, 초서, 행서, 해서 총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글씨의 종류 또한 다시 여러 종류로 분류된다. 신 원장은 자신이 초서와 해서, 행서에 큰 관심을 두었으며 이후 한글과 한문공부에도 깊이 전념했다. 신경용 원장은 모든 글씨에 형통하여 입신(入神)이나 현묘(玄妙)라고 불리는 통달의 경지에 이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며 심수상응(心手相應)의 경지에 닿기위해 노력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신경용 원장은 머리와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욕심은 버리고 부지런히 서예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서예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생각은 없었어요. 오로지 글씨만 생각했습니다. 건강한 몸과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이상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유 없이 서예가 좋았어요. 단순히 기교를 부려 쓴 글씨가 아니라 여러 글자의 형체와 모습을 다양하게 꾸며나가는 일이 좋았습니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여러 글자에 큰 묘미를 느끼고 깊이 공부하게 되었지요. 고정관념에 묶여있지 않고 이상의 것을 창출해내고 싶었습니다.”

부산미술대전을 준비하는 원생들에게 신경용 원장이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다. 한 번 그은 획에 두세 번의 꾸밈이 들어가면 글씨에 잡념이 들어가 자연스럽지 못한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신 원장은 숱한 대회의 수상 경험에도 불구하고 상에 연연하기보다 실력향상에 더 큰 뜻을 두고 정진한다는 말을 남겼다. 솔직한 마음으로 근면·성실·정직을 삶의 태도로 지니며 앞으로도 활동하고 싶다는 신경용 원장. 신념을 가지고 시작한 서예의 길을 마지막까지 이어가길 바란다.

Profile
前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심사위원장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장

부산미술대전 대상
전국서도민전 대상

동방서법탐원회 부회장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자문위원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