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자사고와 불신사회

  • 입력 2019.07.05 17:15
  • 수정 2019.07.05 17:29
  • 기자명 원동인 SPR교육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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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상산고의 자사고 지정 취소에 따른 자사고 폐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너무 복잡하다. 일단 국내 고등학교 종류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 수는 2358개다(2018년 기준, 한국교육개발원).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내건 이후 마이스터고를 만들었고 자사고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춰 전국 42곳 자사고 중 81%인 34곳이 이 시기에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되었다.

전체 학교 중 가장 많은 것은 일반고이다. 일반고는 2018년 기준 1556개 학교가 있으며, 65.98%를 차지한다. 전체 학생 수 153만 8576명 중 109만 6331명(71.3%)에 달한다.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교육 과정을 배운다. 또한 고등학교는 선발 시기에 따라 전기고(8~11월 선발)와 후기고(12월 이후 학생 모집)로 나뉘는데, 일반고는 후기고에 속한다.

전국에는 외국어고 30개교, 자사고 42개교(전국모집자사고 10개교, 광역모집자사고32개교), 국제고 7개교가 있다.  여기에 영재고 8개교, 과학고등학교 20개교가 있다. 전체 고등학교의 4%에 해당하며,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고등학교다. 4%의 학교가 SKY대 정원의 40%을 합격시키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국제중학교도 있다. 2018년 개교한 경남 진주의 선인국제중학교를 포함하여 총 5개교의 국제중학교가 있다. 서울 2개교, 경기도 1개교, 부산 1개교, 경남 1개교이다. 외고·자사고 폐지를 논하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야금야금 국제중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자사고 폐지는 2017년 문제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를 밝힌 후, 진보 교육감들이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자사고 폐지를 찬성하는 학부모들은 "명문고·특목고 가려고 초등학교부터 입시전쟁에 내몰리고 선행에 쫓기고 마치 '사설 기숙학원'처럼 운영되는 학교를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나요? 우수한 학생들이 다 빠져나가니 갈수록 일반고 분위기는 더 악화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왜 외고·자사고만 문제 삼는 건가요? 과학고·영재고 입시는 더 기형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데, 정부와 교육감이 평준화 교육을 앞세워 제각각 특색 있게, 멀쩡히 잘 운영되던 학교를 '이념 논리'로 흔들고 있는 거 아닌가요? 영재고·과학고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국민의 세금과 학생 선발권 특혜를 받고 있는 영재고·과학고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재고는 우수 이공계 인재 발굴과 교육을 목표로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된 고등학교를 말한다. 모든 고교 유형 중 가장 먼저 신입생을 뽑는데다 선발규모(8개교, 총 790명 내외)도 작아 전국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린다. 국민의 세금 지원으로 장학금이 많고 교내에 대학 수준의 인프라는 갖추고 있으며, 학생 선발권의 특혜를 받고 있으나, 설립 취지에 벗어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재고 중 하나인 서울과학고등학교는 2019년 2월 기준 졸업생 130명 중 총 31명(23.8%)이 의대에 진학했다. 이 학교는 총 8학급, 16명 내외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1학급당 4명씩 의대에 간 셈이다. 2019년 서울과학고 졸업생의 의대 진학 비율은 최근 5년간 수치 중 가장 높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2015학년도부터 졸업생의 18~20%가 의대를 갔는데 올해 그 비율이 최대 6%P 가까이 더 올라간 것이다. 서울과학고뿐 아니라 영재고 졸업생의 의대행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2018학년도 기준 경기과학고 졸업생의 5.6%, 대전과학고 졸업생의 5.3%가 의대에 진학했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비율로 졸업생들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고에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 특히 서울지역 과학고에서 두드러진다. 지난해 기준 세종과학고 졸업생의 약 10%, 한성과학고 졸업생의 4.1%가 의대에 갔다. 이런 영재고·과학고에서 학생들의 의대 러시를 두고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자사고도 설립 취지와 다르게 입시명문고로 변질됐다는 이유로 일반고 전환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영재고·과학고 등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가 꼭 필요하다면, 폐지해도 좋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 국민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해야 한다는 정부, 교육감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 설립 취지에 어긋난 외고·자사고 폐지해 공교육 정상화를 도모하자면서, 국민의 엄청난 세금으로 운영되면서도 설립 취지에 어긋나게 운영되는 영재고·과학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는 정부 및 교육 당국자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는 안 되고 저기는 되는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알고 있다. 고교서열화는 외고·자사고뿐만 아니라 영재고·과학고 또한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부와 교육감만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둘째,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외고·자사고 폐지해야 한다는 현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의 자녀가 강남 8학군 출신이거나 외고·자사고 출신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대표적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례를 들 수 있다. 조 교육감은 자사고 축소 정책을 추진해 온 인물 중 하나지만, 두 아들을 모두 외고(장남-명덕외고, 차남-대일외고)를 보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아들 역시 김포외고 출신이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딸도 외고에 입학했다가 일반고로 옮겼다. 외고 폐지 정책을 추진했던 김진표 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도 딸이 대원외고 출신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일도 있다.

고위 공직자라고 해도 경제적 능력이 되고 자녀 학업성적이 뛰어나, 명문고, 특목고에 입학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다. 경제적 능력을 기반으로 대안학교,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것도 불법은 아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외고·자사고 폐지를 외치는 것도 불법은 아니다. 단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외고·자사고 폐지해야 하다면 우물 쭈물 하지 말고 빨리 최종적 결정을 하기 바란다. 그리고 설립 취지에 어긋난 과학고·영재고에 대해서도 빠른 결정을 하기 바란다. 그래야 학부모들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고 다음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의 자녀들은 외고·자사고를 졸업 시키고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것처럼, 보통의 학부모들도 자녀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궁금하다. 전교생의 24%가 의대에 진학하는 영재고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폐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외고·자사고는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부와 교육감의 의견이 정말 궁금하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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