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노르웨이 비겔란 조각공원(Vigelandsparken)

'오벨리스크를 닮은 모노리텐(Monolitten)'

  • 입력 2019.09.17 19:27
  • 수정 2019.09.17 19:30
  • 기자명 김석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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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겔란 조각공원 모노리텐
비겔란 조각공원 모노리텐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1869-1943, Gustav Vigeland)의 조각공원으로 들어서는 좁은 문이 성경 구절을 기억나게 한다. 다섯 개의 큰 문 끝에 열려있는 좁은 문을 통해 비겔란 조각공원 안으로 들어선다. 푸른 잔디와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로 꾸며진 정원 위에 비겔란의 초상 조각이 채 끝내지 못한 작품의 마지막 손질이라도 하려는 듯 오른손에 망치를 든 채 서있다. 

비겔란 조각공원
비겔란 조각공원

비겔란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술에 재능은 있었으나 미술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못하다가 14세 때 목세공가의 제자가 되었고, 또 스무 살 때는 첫 작품전을 갖기도 하였다. 그는 이집트의 조각과 로댕의 사실 조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작품에 몰두한 그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사실주의 양식을 개발하였다. 그가 초기에 만든 인물 흉상과 부조 작품들은 비겔란 조각공원 내에 있는 비겔란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가 있으며, 후기의 기념비적 작품들은 바로 이곳 비겔란 조각공원이 있는 '프로그네르 공원(Frognerparken)'에 전시되어 있다. 
비겔란의 상을 뒤로하고 하늘 높이 솟아있는 나무숲 터널을 지나니 커다랗게 만들어진 다리가 나타나고 다리의 입구에 수문장과도 같이 사탄에게 잡힌 아담과 이브의 상이 세워져 있고, 다리의 난간 양쪽으로 비슷비슷한 크기의 작품들이 서있다. 아이들과 여인의 상 그리고 아버지와 자녀, 부부, 가족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비겔란이 가족을 중요시하는 삶을 얼마나 존중하였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다리를 넘어서니 넓은 광장의 중앙에 커다란 분수대가 나타나고 그 위에 6명의 사나이가 거대한 수반을 떠 바치고 있는 조각 작품이 나타난다. 당당한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수반을 받치고 있는 늙은이 쪽으로 분수대가 기울고, 토해내는 물줄기는 노인을 압박하며 물거품을 만든다. 분수대 주변에는 많은 작품들이 감싸고 있다. 모두가 사람이 태어나 어린이와 젊은이로 살다가 늙어지면 죽어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인생사를 표현하고 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닮은 ‘모노리텐(The Monolith Plateau)’을 감상하는 것은 이 조각공원의 하이라이트다. '모노리텐'을 만들기 위해 비겔란은 1919년 스케치를 시작하여 1925년 121명의 인체가 뒤엉켜 있는 거대한 상을 진흙으로 실물크기로 만들었고, 1929년에는 높이 17.3m, 무게 270t의 거대한 화강암 한 덩어리가 오슬로 피오르드로부터 이곳으로 운반되어졌다. 그 후 3명의 석수가 화강암을 다듬는 작업만 14년간 계속되었고,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는 비겔란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조각공원의 정문을 들어와 850m의 일직선으로 조성된 조각 작품 감상 여행은 비겔란의 노년기 작품 '인간 고리(The Wheel of Life)' 앞에서 끝을 맺는다. 인간의 행복과 슬픔, 그리고 희망과 영원을 소재로 하여 인간의 한평생을 하나의 원형 고리로 만든 작품이다. 

비겔란 조각공원에서 김석기 작가
비겔란 조각공원에서 김석기 작가

비겔란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일생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많은 고뇌 속에 오직 가족과 인간관계를 통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모든 정열이 배어있는 작품마다 제목이 붙어있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이 충분히 제목 없는 호소력을 갖고 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가 말하고 싶었던 그 많은 사연들을 함축해내는 언어들을 찾아내기가 작품 만들기보다 더 어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작품들은 설명 없이 그가 말하고 싶은 모든 내용들을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뭉크와 비겔란이 사랑했던 도시 오슬로를 떠난다. 노르웨이의 호수 중에서 가장 크다는 미외사 호수를 따라 달린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노르웨이의 풍경들이 여유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호수의 길이가 110km, 폭이 8km 정도가 된다고 한다. 두 시간을 달려도 강과 같은 호수는 계속되고 아름다운 풍경은 끝을 모른다. 호수가 끝나는 지점 가까이에 있는 휴게소에 ‘199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릴레함메르’라고 쓴 커다란 이정표가 보인다. 호수 건너편에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슬로 가는 길
오슬로 가는 길

인구 3만이 되지 않는 조그마한 동네에 당대 가장 유명한 노르웨이의 시인이며 극작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노르웨이의 국가 ‘우리는 이 땅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를 쓴 비외른손(Bjornson1832-1910)의 생가와 농장이 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비외른손은 작은 농촌마을에서 자라면서 보고 느낀 농촌에 대한 영감과 북유럽에 산재해 있는 전설들을 모아 노르웨이의 역사 속에 녹여 노르웨이 국민들을 일깨워 그들의 자부심을 자극하고, 삶의 이상을 제시하는 국민 계몽에 애썼다. 

1857년에는 입센의 후임으로 베르겐 극단의 예술 감독이 되기도 했던 그는 예술가들이 정치에 개입하여 갈등과 싸움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 순수한 예술작품에 소홀히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그래서 자신은 글 쓰는 데에만 전념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떠나 망명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그가 창작활동에만 전념하여 쓴 희곡‘파산’과‘편집자’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변화는 우선 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만년에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세계 평화와 국가 간의 화해를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1903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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